[서울=뉴스핌] 유수진 기자 = "제 가족들과 관련된 문제로 국민 여러분 및 대한항공 임직원 분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제 잘못입니다."
조양호 회장의 사과에도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악화되는 모양새다. 경찰과 관세청, 국토부가 폭행‧밀반입‧탈세 등의 혐의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고, 하루에도 수십 건씩 조 회장 가족들과 관련된 새로운 제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온갖 폭로의 출처가 외부가 아닌 회사 내부 직원들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참고 또 참아온 내부의 목소리가 조현민 전무의 '물컵 투척' 사건을 계기로 폭발해버린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되 구체적인 상황 설명과 녹취파일, 동영상 등을 증거로 삼아 신빙성 있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대한항공 직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사원증이나 명함, 항공 전문용어 등도 적극 활용한다.
실제로 지난 12일 조 전무의 '물컵 투척' 사건이 처음 알려졌을 때만해도 이렇게 까지 논란이 커질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조현아 사장의 '땅콩 회항'에 이어, 동생인 조 전무까지 물의를 일으키자 이들을 향한 비난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용기를 얻은 내부 직원들이 평소 눈감을 수밖에 없었던 사건들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 결국엔 한진가(家) 전체가 온갖 의혹에 휩싸이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현재도 대한항공 직원들로 구성된 카카오톡 익명 제보방과 블라인드앱에는 조 회장과 부인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 조원태‧현아‧현민 삼남매에 대한 갖가지 의혹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심지어 이번 사안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위해 '전직 임원들이나 운전기사 등을 접촉하면 생생한 피해사례를 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취재 팁'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제보방의 수용 가능 인원이 꽉 차 제2, 제3의 방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아온 직원들의 고충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직원들에게 대한항공은 단순히 밥벌이를 위한 '노동의 장소'가 아닌 희로애락이 녹아있는 '삶의 터전'이었다. 총수 일가의 위법행위를 폭로하면서도 '소중한 대한항공을 살리기 위해 제보를 결심했다'는 설명이 따라 붙는 이유다.
따라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제보 행렬은 단순히 조씨 자매가 미워서 참았던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삶의 일부인 회사가 잘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용기를 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한항공은 이러한 직원들의 마음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한항공은 내년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있다. 단지 총수 일가라는 이유로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막말을 일삼고 직원들을 하인 부리 듯 대해온 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총수 일가 몇 명의 회사가 아닌 전직원 모두의 대한항공이 돼야만 더 오래도록 국민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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