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이란 핵협정 문제를 두고 서방 동맹국으로부터 미국의 고립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이란 핵협정을 탈퇴하겠다고 발표하자 유럽 동맹국들이 일제히 유감을 표명, 핵협정을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이날 공동 성명을 통해 "우리는 함께 포괄적 공동계획(JCPOA)에 대한 지속적인 약속을 강조한다"며 "이 협정은 우리의 공동 안보를 위해 매우 중요한 것으로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로이터 뉴스핌] |
지난 2015년 7월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중국, 러시아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국과 이란이 참여한 이란 핵협정 JCPOA은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가로 이란에 가해진 국제 제재를 해제하는 게 골자다.
공동 성명에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이후 즉각 트위터를 통해 실망감을 표시하며 미국의 핵협정 탈퇴 '비판'의 선봉에 섰다. 발표 수 시간 전만 하더라도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통해 중동의 평화와 안정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을 쌓기 위해 노력해왔던 마크롱 대통령은 이란 핵협정을 지키기 위해 공을 들여왔었다. 미국을 설득 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까지 반영한 수정안을 마련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끝내 파기 의사를 밝힌 것이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도 성명을 통해 EU 지도자들은 미국의 결정을 향후 수일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란 지도자들에게 그 누가 협정을 해체하도록 내버려 둬선 안 되며 유럽은 협정을 보존하고 그들(이란)의 안전과 경제적 이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을 비난해왔던 만큼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서방 동맹국을 비롯한 협정 당사국들에 놀라운 사실은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이후 이란 핵협정이 이란의 핵 재무장과 탄도 미사일 개발 등을 막을 수 없으며 이란이 수차례 협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란이 핵협정를 위반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유엔 산하 사찰기구인 국제원자력기구(IAEA)까지 이란이 핵협정을 완전히 이행하고 있다고 평가한 상황이다.
협정 당사국인 러시아와 중국도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국제법 규범을 크게 위반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샤오셩(宮小生) 중국 중동문제 특사는 협정 당사국들은 협정을 준수해야 하며 특정국의 일방적인 압력이나 위협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이란 핵합의 탈퇴를 부추긴 이스라엘과 이란과 앙숙인 사우디아라비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지지를 표시했다. 베냐민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역사적인 움직임"과 "용기있는 리더십"이라며 한껏 추켜 세웠다.
◆ 이란 제재, 기존 유예기간 끝난 뒤 복원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선언에 따라 그동안 유예기간을 두고 중단됐던 이란 제재가 복원될 예정이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제재 유예기간에는 90일과 180일 2단계가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오는 12일 이란 제재 유예가 연장되지 않으면 그간 중단됐던 제재들이 2단계의 유예기간이 끝난 후 복원되는 셈이다.
90일 유예기간의 경우 오는 8월 6일부터 이란 정부의 달러 구입 및 취득, 이란과 금 및 귀급속 거래, 또 흑연과 원자재 및 반제품 금속, 석탄, 산업용 소프트웨어에서의 이란과 직·간접 판매·공급·운송 등에 대한 제재가 재개될 예정이다.
180일 유예기간의 경우 오는 11월 4일부터 이란 에너지 분야와 보험 및 인수(언더라이팅) 서비스 제공에 대한 제재가 복원된다. 또 이란 국영 석유회사나 이란 기업으로부터 이란산 석유, 석유제품 또는 석유화학 제품을 구매하는 것도 제재를 받게 된다. 이란 해운 및 조선 분야도 제재 대상이다.
또 2012년 미 의회에서 지정 받은 이란 중앙은행 등 이란 금융기관과 외국계 금융 기관 간 거래에 대해서도 제재가 부과될 예정이다.
앞서 재무부는 이란과 여객기 공급 계약을 체결한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사에 대한 허가도 취소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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