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민경하 기자 = "안전하다 안전하지 않다는 식의 판단을 하기에는 이 수치를 갖고 하기에는 저도 말씀드리지 못하고..."
지난 10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
엄재식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사무처장이 "대진침대의 피폭선량이 기준치를 밑돈다"고 발표하자 기자들의 추가 질문이 이어졌다.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질 수록 그의 입장은 모호해졌고 목소리에는 힘이 없어 보였다.
불과 닷새만인 지난 15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차 발표를 갖고 "대진 침대 모델 7종에서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검출됐다"고 발표해 1차 조사 결과를 뒤집었다. 이날은 라돈 검출 사실이 최초보도된 지 12일째 되는 날이었다.
매일 잠자리에 드는 침대에서 방사성 물질이 나온다는 믿기지 않는 보도는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원안위는 2차 발표에서 대진 침대가 2010년 이후 제작한 61406개의 침대에서 1급 발암물질인 라돈이 검출돼 전량 회수 명령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원안위가 제대로 기능했다면 막을 수도 있었다.
정부는 2013년부터 '천연 방사성물질을 취급하는 업체가 취급 물질 종류와 수량 등을 원안위에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천연 방사성 물질 취급자 등록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천연 방사성 물질에 대한 제작·유통·폐기 등 총체적인 관리를 원안위를 통해 구현하겠다는 것이었다.
문제의 모나자이트 성분이 들어간 음이온 파우더를 납품한 업체는 규정대로 원안위에 납품 내용을 신고했다. 하지만 원안위는 라돈을 발생시키는 모나자이트 물질이 침대 매트리스 제조업체에 납품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납품 사실 자체가 비상식적인데도 불구하고 이유를 물어볼 생각조차 못 한 것이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오전 서울 광진구 대진침대 중곡직영점의 문이 닫혀 있다. 2018.05.16 leehs@newspim.com |
라돈 사태가 터진 이후에도 원안위의 대처 방식은 여전했다. 3일 SBS 최초 보도한 이후 다음날인 4일, 원안위는 대진 '라돈 침대' 방사능 분석에 대해 착수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10일 1차 발표에서 원안위는 "외부피폭선량 기준인 1mSv(시버트)에 미치지 않는다"면서도 "안전한지는 아직 판단이 서지 않으니 우선은 리콜할 수 있으면 하라"는 식의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원안위는 국내의 모든 원자력시설 관리는 물론 생활 속 방사선에 대한 안전점검까지 원자력 안전에 대한 총괄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이다. 대한민국 원자력 안전관리의 최전방에 있는 기관이 내놓은 답변이라고 보기엔 허술했다.
그리고 이 답변마저 5일 만에 뒤집혔다. 피해자들의 주장대로 속 커버 뿐 아니라 내부 스펀지까지 조사해보니 라돈이 검출된 것이다. 차라리 1차 발표가 조금 늦어졌더라도 좀 더 많은 시료를 전체적으로 조사해 확실한 대답을 내놓았어야 했다.
그 사이에 피해자들은 2차 피해를 겪었다. 1차 발표 이후 일부 언론이 '방사능 기준치 미달'이라는 표현을 부각하자 일각에서는 "라돈 침대 피해자들이 한 중소 침대 기업을 회생 불가 상태로 몰고갔다"는 소리도 나왔다. 과한 반응으로 보상만 노린다는 소리를 들어온 피해자들은 이제서야 진짜 피해자가 되었다.
'국민이 신뢰하고 세계와 함께하는 원자력 안전 구현'. 원자력안전위원회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위원회 비전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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