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미국 정부와 의회가 외교정책의 첫 번째 수단으로 제재를 남발해, 동맹국들 사이에서 신뢰를 잃고 국제시장에서 미달러의 위상이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되고 있는 개인과 단체 리스트는 이미 1100쪽이 넘는다. 제재가 해제될 수는 있지만, 이 리스트에서 삭제되는 대상보다 추가되는 대상이 훨씬 많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지난 2월 핵 개발 자금줄로 지목돼 온 북한의 해상무역을 봉쇄한다며 북한 관련 선박, 기업, 개인 등에 대해 제재를 가했다.
같은 달 마약과 석유 밀거래, 성범죄, 소년군인 모집 등을 이유로 콜롬비아, 리비아, 콩고도 제재 대상에 올렸다.
파키스탄, 소말리아, 필리핀 등의 테러단체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뿐 아니라 필리핀, 서아프리카, 방글라데시, 부르키나파소 등에서 테러단체로 지목된 단체들도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올랐다.
미국 제재는 지난 2001년 9·11테러 이후 더욱 빈번하게 이뤄졌다. 테러단체들이 국제 금융 시스템에 접근하지 못하게 해 자금줄을 차단하거나 인권 유린과 부패 지도자들을 척결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주로 북한, 이란, 러시아 등 미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대상을 겨냥했지만, 점차 안정을 저해하는 행동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미국 로펌 깁슨던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집권 첫 해인 2017년에 1천개에 가까운 단체와 개인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이는 버락 오바마 전임 행정부의 집권 마지막 해 리스트보다 30%, 첫해 리스트보다 3배 많은 수준이다.
깁슨던은 “제재 대상이 되는 것은 경제적 사형선고와 다름없다”며 “제재는 미 행정부로서 매우 달콤한 수단이다. 사전 공지도, 사법적 검토도 필요하지 않지만 효과는 즉각 발동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성격이라면 제재 유혹에 쉽게 넘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제재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다. 가장 큰 이유는 은행부터 석유까지 거의 모든 국제 거래가 미달러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한 국가를 대상으로 대형 해머처럼 휘둘렸던 미국의 제재가 이제는 점차 정교한 칼날이 돼 개인을 겨냥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와 의회의 제재 남발로 제재의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제이콥 루 전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2016년 연설에서 제재를 남발하면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 금융시스템을 찾지 않게 돼 미달러의 위상이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또한 미국의 제재 남발에 당혹감을 느끼는 동맹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제재 효과는 반감될 수 밖에 없다.
미국의 이란 제재 부활이 대표적인 예다. 트럼프 행정부가 기어이 유럽과 거래하는 유럽 기업들에게도 세컨더리 보이콧을 행사하면 EU와의 관계 악화는 피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g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