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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화가 최선 "오디나무 열매에 촛불시위를 담았다"

기사등록 : 2018-08-2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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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에서 '오수회화' 첫 상업 개인전 개최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작가 최선의 개인전 ‘오수회화’ 초대장을 받았다. 투명한 비닐에 포장된 초대장에는 말린 꽃잎 같은 것들이 묻어 있었다. 알고 보니, 흩어진 꽃잎을 떠올리게 하던 것은 말린 오디나무 열매였다. 최 작가의 첫 개인전을 통해 선보이는 신작 ‘유월의 오디’의 축소판으로 볼 수 있다. 초대장부터 예사롭지 않은 그의 첫 상업 전시  ‘오수회화’ 에는 그가 기존에 해온 개념미술을 기반으로 한 회화와 설치작업으로 꾸며졌다.

개막 이틀 전인 지난 27일 갤러리 P21에서 작가 최선(46)과 마주했다. 첫 상업 전시를 하게 된 소감을 물으니 최 작가는 “저는 보편성을 가진 작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새로운 시도를 한 P21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P21 최수연 대표는 “최선 작가가 너무 겸손하시다. 저는 최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봐왔고 꼭 소개하고 싶었다”고 화답했다.

최선 작가는 왜 자신이 상업 전시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을까. 그는 “작가는 멋있고 여유있고 멋과 흥 이런 게 있어야 하는데, 저는 가시 돋친 부분도 많이 있다(웃음). 보편적인 작가와 거리가 멀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상업성이 없는 제 작품을 P21에서는 작가의 영역을 인정하며 작업에 집중하도록 도와줬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유월의 오디' 작품 앞에서 최선 작가 2018.08.29 89hklee@newspim.com

새로운 시도의 초대장 디자인에는 최 작가도 즐거워했다. 그는 이 같은 새로운 도전과 시도가 미술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초대장도 최수연 대표의 아이디어죠. 이와 같은 실험적인 시도를 우리는 해야 합니다. 새로운 시도는 취향의 확장을 일으키고 미술시장을 넓힐 수 있습니다. 늘 하던 것만 하면 생산 없는 소비만 일어나게 되고 그러면 미술이라고 부를 만한 이유가 없겠죠. 스스로 부정도 해보고 부정을 토대로 새로운 걸 만드는 시도를 다양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월의 오디’는 올해 2018년 모습의 단면을 담은 작품이다. 청와대 앞 명륜동에 작업실을 두고 있는 그는 유난히 많이 심어진 오디나무를 우연히 보게 됐고, 길바닥을 갈색빛으로 물들인 오디나무 열매의 흔적을 보면서 지난해 촛불시위를 떠올렸다. 최 작가는 오디나무 열매가 바닥에 뭉그러진 모습이 “마치 총알의 흔적 같더라”고 말했다.

“오디나무 열매가 5~6월 사이에 많이 떨어진다고 해요. 바닥을 보면 잔혹할 정도로 처참한 광경이에요. 몇 해 전 촛불 시위가 일어났을 때 몇몇 사람들은 계엄령 선포와 발포 계획을 갖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저도 (촛불시위) 자리에 있었는데, 힘 없는 사람들은 오디가 바닥에 떨어진 것처럼 깔아 뭉개지고 처참하게 되는 거 아닌가 싶더라고요. 땅에 떨어진 오디를 주워 캔버스에 으깨 총알 자국처럼 만들었습니다. 보기에 끔찍해 보이지만 오디의 향은 향긋하죠. 이중적 의미가 포함됐다고 볼 수 있겠네요.”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오수회화' 앞에서 최선 작가 2018.08.29 89hklee@newspim.com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대표작은 전시 제목이기도 한 ‘오수회화’다. 과거 난지지구에 레지던스를 얻었을 때 겪은 경험이 바탕이 됐다. 하수처리장에서 기름종이를 띄웠고 그 위에 나타난 오수의 패턴을 선택했다. 오수의 패턴을 과장되게 캔버스에 옮겼고 이를 푸른색으로 표현했다. 생동감 넘치는 색채와 역동적인 화면의 움직임이 담긴 작품이다.

“오수의 패턴이 아름다운 무늬로 바뀌었습니다. 그 간극의 차이는 보는 이들마다 다르겠죠. 하수처리장에 모인 거품의 형태를 패턴화하는 건 단순히 시각적인 소비 형태지만 그 뒤에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에 본질의 의미가 숨어있죠. 제 꿈과도 직결되는 부분인데, 눈과 손이 없어도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겁니다. 본능적으로 본질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기획하고 싶습니다.”

P2 공간에 마련된 설치작업 ‘중단된 여행’은 경계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중단된 여행’은 천정에 설치된 소금통에서 소금이 떨어지는 작품이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신체에 소금이 묻고, 관람객이 갤러리를 떠나는 순간 이 소금도 더 넓은 세상과 만나게 되는 거다.  작가는 “궁극적으로 경계나 막힘은 사람을 통해 풀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며 “사람은 움직임을 갖고 미래 지향적으로 막힌 걸 풀어야 한다”며 굵직한 메시지를 던졌다.

참고로, 이 소금은 북에서 내려온 바닷물을 강원도 고성에서 받아 작가가 직접 끓이고 건조해 만들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하드엣지' 앞에서 최선 작가 2018.08.29 89hklee@newspim.com

“바닷물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액체입니다. 그런데 소금이 되면 여행에 강제로 중단된 여행자의 모습에 비유할 수 있겠죠. 우리나라만 해도 남한과 북한이 분리된 상태로 강제로 여행이 중단됐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북한의 바닷물을 받아 만든 소금이 관람객의 키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이를 인지하지 못한 관람객을 통해 소금은 어디론가 가서 물에 씻겨서 세상 속으로 다시 여행하게 될 겁니다. 즉, 관람객이 작품에 또 다른 완성을 가져다주는 주체로 전시를 꾸렸습니다.”

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거울의 형태지만 칼끝처럼 날카로운 끝을 가진 ‘하드엣지(Hard Edged)’로 세상의 날카로움을 소개하고, ‘지렁이글씨 Will’을 통해 자신의 온몸으로 한 글자를 만들어 입장을 표명하는 지렁이를 통해 ‘솔직함’을 이야기한다. 최 작가는 자신에 대해 “멋과 흥이 없고 가시 돋쳐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기성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날선 입장도 전했다.

중단된 여행 [사진=P21]

“작가 선배들에 대한 큰 존경심이 없어요. 오히려 창피합니다. 기성 작가들에게서 작품성과 삶의 철학, 세계관과 인간과 혹은 시간을 이해하는 역사관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이죠. 신문 기사나 비평만 봐도 대부분이 서구에서 모방하는 형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코미디 같은 현실입니다. 현대 미술에서 어떤 현대성을 추구해야하는지 고민해야합니다. 그리고 함께 공유하는 문제의식도 가져야 할 겁니다.”

최선의 ‘오수회화’는 8월29일 개막해 10월7일까지 갤러리 P21에서 펼쳐진다.

최선은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후 뱅크아트 Studio NYK(2013, 일본), 송은아트스페이스(2015), CR Collective(2017)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뉴욕 한국문화원(2015, 미국), 주중 한국문화원(2016, 중국), 소마미술관(2016), 금호미술관(2018) 등 주요 기관 전시에 참여했다. 주요 소장처로는 Sigg Collection(스위스), 서울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등이 있다. 

89hkle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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