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황선중 기자 김현우 하수영 수습기자 =대피령이 내려진 아파트는 출입이 통제됐다. 난리통에 귀중품을 두고 나온 주민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지병이 있다며 약을 챙기러 통제선을 넘어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급한 마음에 반려묘만 품에 안고 뛰쳐나왔다던 한 60대 여성은 "공사용 철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면서 "가족들을 모두 깨우고 키우는 3살 고양이만 데리고 나왔다"고 말했다. "싱크홀이란 것을 뉴스에서만 들었지. 나에게 올 줄은 전혀 몰랐다"고 그는 말했다.
31일 오전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가로 30m, 세로 10m 크기 대형 싱크홀이 발견됐다. 대피소에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던 아파트 주민들은 우려하던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며 열을 냈다.
31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싱크홀 [사진=독자제보] |
사고는 이날 오전 4시36분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 아파트 인근 공사장에서 발생했다. 아파트 주민 200여명은 소방당국의 통제하에 인근 경로당 등으로 긴급대피했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놀란 주민 2명이 병원에 실려 갔다. 소방당국과 금천구청 등은 "파트 옆 공사장에서 축대가 무너지면서 주차된 차량 4대가 파손됐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주민들은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대피소마저 무너질까 두려웠다. 사방이 뚫려있는 단지 내 놀이터가 더 믿음직했다. 놀이터에는 주민 수십여명이 모여 있었다. 주민들은 "114동 걔는 괜찮대?"하며 서로를 걱정했다. 생후 7개월 됐다는 아기는 새벽 사이 잠을 못 잤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놀이터에서 만난 한 중년 여성은 "돌산 깎아 지은 집이라 아파트가 튼튼하고 배수도 잘됐다"며 "이번 집중호우에도 걱정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전화기는 쉴 틈이 없었다. 안부를 묻는 전화는 계속 이어졌다. 돌산 이야기 역시 끊이지 않았다.
뉴스를 보고 급하게 부모를 찾아온 자매도 있었다. 세 자매는 "엄마 밥은 먹었어? 밥 먹어야지"라며 벤치에 앉은 엄마의 등을 토닥였다. 엄마는 되려 이른 시간부터 먼 길을 어떻게 왔냐며 딸들을 걱정했다.
[서울=뉴스핌] 하수영 수습기자 = 31일 오전 대형 싱크홀이 발견된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아파트 단지. 2018.08.31 suyoung0710@newspim.com |
근심 가득한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동네주민 모임에 신난 모양이었다. 20개월 된 아이는 놀이터를 아장아장 걸어 다녔다. 유모차에 탄 한 여자 아이는 과자를 더 달라며 할머니를 채근했다. 주민들이 데리고 나온 반려동물을 보며 인사하기도 했다.
"저 반대편에서 맨날 밤까지 땅 파더니 결국 이렇게 됐네"
한 주민이 내뱉었다. 건너편 공사장에서 밤낮없이 오피스텔 신축을 위해 땅을 판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한탄으로 들렸다.
주민들은 예전부터 문제가 된 신축 오피스텔 공사장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경비원 김모(69)씨는 "건물이 아파트와 너무 가까워서 일조권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항의가 예전부터 있었다"고 설명했다. 해당 오피스텔은 지하 3층 지상 30층 규모 건물이다. 공사장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분진도 주민들의 불만을 고조시키는 데에 한몫했다.
[서울=뉴스핌] 하수영 수습기자 = 31일 오전 대형 싱크홀이 발견된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아파트 단지. 2018.08.31 suyoung0710@newspim.com |
주민들은 구청의 아파트 안전진단 이후 귀가할 수 있다. 만약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대피소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 일부 주민들은 "안전하다는 등급을 받는다 한들 심장떨려 집 들어가 살겠느냐"라고 되물었다. 난데없는 '날벼락'에 주민들은 억울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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