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사진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고, 사건을 기록하는 기능이 특화돼 있다. 그래서인지 사진은 드로잉과 페인팅과는 결이 다른 공감을 대중과 형성한다.
이 순간은 지난달 18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명-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과 1일부터 시작된 2018 서울사진축제의 본 전시 ‘멋진 신세계’, 그리고 지난달 17일부터 오는 5일까지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열리는 ‘한라산과 백두산 사진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명’전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전 로잔 엘리제 사진미술관장 윌리엄 A. 유잉이 공동 기획한 전시로 전세계의 사진작가들이 현 인류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한 작품을 담고 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선보인다. 전시 주최측은 “문명은 축적되는 것이며, 이 사진 작업 역시 그 일환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문명-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전시장 전경 [사진=국립현대미술관] |
전시에서는 사람들이 밀집된 도시의 모습을 ‘벌집’으로 해석한다든지, 급발전한 도시의 모습이 획일화되고 있는 중국의 상황을 꼬집기도 한다. 그리고 권력 기관이 자신의 권력을 나타내기 위해 시도하는 여러 가지 상황과 사례도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강수정 과장은 다른 회화 장르와 다른 사진 매체의 큰 특징은 친근함이라고 소개했다. 강 과장은 “과거에는 사진기가 있어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기계’로 인식됐기 때문에 (대중의)접근 자체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촬영이 가능한 세상이 됐다. 그래서 사진은 친근한 창작 매체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명’전을 사진전으로 기획한 이유에 대해서는 “사진은 객관적인 사물을 작가의 해석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강력하고 의미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전시는 전세계적으로 흩어진 문화사, 혹은 나뉜 문화사에 대한 우리의 공통적인 관심을 보여준다”고 첨언했다.
이 사진전은 관람객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고 강 과장은 해석했다. 그는 “사진은 문명이나 커뮤니티에 소속된 사람에게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치는지 생각하게 한다”며 “이번 전시의 작품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포함됐다. 비평가는 물론이고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이들도 즐거워할 수 있는 전시”라고 강조했다.
전용문 작가가 찍은 백두산 천지 [사진=세계유산본부] |
제주도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을 맞아 한라산과 백두산의 사계를 담은 사진 전시를 마련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한라산과 북한의 명산인 백두산의 절경을 찍은 사진 40점이 펼쳐진다. 너무 높아서 혹은, 멀어서 갈 수 없는 두 명산의 아름다움이 사진 속에 고스란이 묻어있다.
이 전시를 기획한 김영호 과장은 “사진이야말로 한반도에 피어난 평화 모드를 관람객에게 직접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매체다. 사진은 사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이 전시는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고 지속적인 문화교류를 희망하는 차원에서 준비됐다. 관람객들이 남북 사이에 조성된 평화 분위기를 친근하고 정서적으로 가깝게 느끼게 하기에는 사진이 가장 적절한 매체라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2018 서울사진축제가 열리는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는 ‘멋진 신세계’ 전시가 펼쳐진다. 기혜경 본부장은 이번 전시에 대해 “작가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로부터 영감을 받아 과학과 기술문명에 따른 인간조건의 변화와 대응방안을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살펴본다”고 밝혔다.
이 전시를 기획한 정재임 큐레이터는 “경제개발 체제에서 인간이 일으키는 수많은 문제를 살펴본다”고 언급했다. 이어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가상의 공간인 디지털 환경에서 던지니, 인간의 문제가 더욱 뚜렷해지는 듯하다. 이를 통해 우리가 도달할 미래의 존재 조건을 암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시장에서 관람객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달라진 ‘사진’과 ‘피사체’의 개념을 비롯해 사진작가들이 바라본 사회 ·정치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마주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조화, 환경 파괴 등 관람객이 현실에서 마주하는 현상을 작가들의 다채로운 시선으로 해석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에서 일본인 여성의 앨범을 발견한 이야기를 ‘방문, 관찰, 기록:후쿠시마’ 작품으로 엮은 박진영 작가가 사진의 독보적인 기능과 힘은 ‘공감’이라고 밝혔다. 박 작가는 “사진 매체는 사실에 입각한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이 더욱 공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진영 작가의 ‘방문, 관찰, 기록:후쿠시마’[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2018.11.01 89hklee@newspim.com |
그는 이 일환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일본인 카네코 마리의 사진을 전시장으로 옮겼다. 2011~2015년까지 후쿠시마 이와테현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촬영하던 박 작가는 해수욕장에 주인 없는 앨범이 태풍으로 떠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앨범에는 1920~1930년 생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의 어린시절 모습이 담겨 있었고, 사진은 아버지가 찍어준 것으로 추정했다.
박 작가는 “이 앨범을 세상에 공개해서 이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제가 줍지 않았다면 이 앨범은 불타거나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이 사진과 제 작품 활동은 사라진 2만 명 중 한 사람의 발자취를 찾아보기 위한 시도”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연 앞에 인간은 한없이 작은 존재다. 이는 인간이 노력해도 안 되는 부분이다. 이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허락되지 않은 사진을 전시해 법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비판적 시선에 대해서는 “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이와 같은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혜경 본부장 역시 “작가는 좋은 의도로 작업한 것이다. 현대미술에서 초상권과 예술성의 문제를 두고 논의되는 이슈 중 하나다. 이러한 작업활동은 인권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은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 허용 범위에 대해서는 구체적이지 않다”고 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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