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하수영 기자 = 북한 당국이 대북제재의 영향을 줄이고자 장마당에 물품을 대량 공급하거나 거래대금을 갚지 않는 등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북한의 영세상인들과 중국 기업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4일 북한과 중국 소식통들의 인터뷰를 인용해 “대북제재로 외화벌이가 힘든 북한 당국이 서민들이 꾸려가고 있는 장마당에 끼어들거나 중국 무역기업들의 무역대금을 갚지 않는 방식으로 외화가 부족한 상황을 모면하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 주민들이 북중 접경지역 노상에서 곡식을 팔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RFA는 “북한은 이미 오래 전부터 배급제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대신 장마당이라는 형태로 시장경제가 뿌리내렸는데 최근 여기에 북한 당국이 끼어들어 혼란이 일고 있다는 제보가 속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RFA에 따르면 북한 평양무역회사 소속 식품공장이 각종 즉석식품을 지방도시에 대량으로 공급, 소규모로 상품을 만들어 팔던 영세 상인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평안남도의 한 소식통은 “평성의 시장에 평양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상품들이 싼 가격에 공급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평양식품회사가 앞발치기(선수치기)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이어 “대표적으로 시장에서 인기가 있는 상품은 ‘변성국수’가 있다”며 “이것은 2000년대 초반 지방의 국영공장 기술자들과 개인 돈주(신흥 부자)들이 연합해 개발한 상품으로 끓이지 않고 찬물에 담근 후 바로 김치에 말아서 먹을 수 있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상품인데, 이 마저도 평양 공장에서 대량 공급하고 있어 지방의 영세 상인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영세 상인들은 평양식품회사가 ‘변성국수’ 아이디어를 아무 대가 없이 가로채 이득을 챙기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이 소식통은 “연말이라 지역마다 봉지 짜장면, 즉석국수(라면), 변성국수, 크림빵 등 가공식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데 평양 공장들 때문에 영세 상인들의 장사 매출은 줄어들고 있다”며 “평양시에는 이미 ‘금컵체육인종합식료품공장’ 등 여러 대규모 식품 공장들이 가동되고 있지만 또 다른 식품공장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어 영세 상인들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그러면서 “이런 경향은 비단 식품 뿐만 아니라 약품, 화장품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영세 상인들은 여기에 노동당이나 군이 평양 기업들에 입김을 작용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북한 당국은 대북제재로 수출이 막혀 외화벌이가 잘 안되니까, 대신 국내 유통망을 독점해 서민 생계를 위협해가며 외화를 충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 신의주와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를 잇는 '조중친선다리'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한편 중국 소식통들은 북한 당국의 강압적 형태로 중국의 무역 회사들도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단둥에서 10년 넘게 북한과 거래 중인 한 무역기업 대표는 “북한과 거래 중인 무역회사들 가운데는 겉으로는(장부상으로는) 흑자인데 실제로는 파산 위기나 유동성 위기(현금이 부족한 상태)에 처한 경우가 많다”며 “모두 북한이 무역대금을 갚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폭로했다.
이 대표는 “북한과 거래를 할 때는 보통 외상으로 수출을 한다”며 “과거엔 북한이 현금이 없으면 석탄이나 철광석 등으로 갚아주고는 했는데, 최근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그 마저도 안 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어 “중국 기업들은 더 이상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북한 기업에 물건을 보내지 않으려 하지만 북한 기업들이 되레 ‘거래를 끊자’, ‘외상값을 안 갚겠다’고 적반하장으로 나와서 ‘울며 겨자먹기’로 또 외상 판매를 하게 된다”며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과거 대북제재가 없을 때 중국 무역회사들이 북한과 거래를 트려고 무분별하게 수출을 벌인 탓에 지금 같은 상황이 초래된 것 같다”며 “이전에 장성택을 등에 업고 잘 나가던 북한의 ‘승리무역’이 파산했을 때 그 상대 회사인 중국의 홍샹그룹도 거액의 무역대금을 받지 못한 채 함께 파산한 사례가 있어 중국 기업들은 이런 상황이 재현될까봐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suyoung071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