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무엇이 대형병원 의사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가? 설 연휴 서울과 인천의 대형병원에서 두 명의 의사가 과로로 숨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앞서 정신과 진료를 받던 의사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각광받는 직업인 ‘대한민국 의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모든 의사들이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비상경보음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예견됐던 참사라는 자성론도 높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세계 11위 경제대국, 세계 6위 무역강국이란 대한민국 위상에 걸맞는 의료 시스템을 갖는 것이 아직은 요원한 꿈일까요?
아직도 후진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병원의 현실을 진단해 봅니다.
[서울=뉴스핌] 황선중 기자 = 설 연휴 중인 지난 4일 숨진 윤한덕(51)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장과 지난 1일 숨진 가천대 길병원 2년 차 전공의 A(33)씨의 공통점은 모두 병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정확한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의료계는 이들의 죽음이 모두 '과로'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제는 장시간 근무에 노출된 의료계의 근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의사에게 근로기준법은 '꿈 같은 일'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현행 근로기준법 제50조는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같은 법 제54조에는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주어야 한다'고 돼 있다. 모두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조항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하지만 의사와 간호사 등 보건업 종사자들에게 주 52시간 근무는 먼나라 이야기에 가깝다.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사회 전반에 적용 중인 52시간 근무제는 전공의들에게는 꿈 같은 일"이라고 했다. 보건업은 주 52시간 근무에 해당되지 않는 '근로시간 특례업종'이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특례업종은 일반 시민에게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부 업종 근로시간에 유연성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근로시간 특례업종은 26개 업종에 달했으나, 현재는 보건업 및 육상운송업, 수상운송업, 항공운송업, 기타 운송관련 서비스업 등 5개 업종만이 남아 있다.
근로기준법 제59조는 보건업 등 5개 업종 종사자들에 한해서 '사용자가 근로자 대표와 서면으로 합의한 경우에는 주12시간을 초과하여 연장근로를 하게 하거나 제54조에 따른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특례가 적용될 때 '사용자는 근로일 종료 후 다음 근로일 개시 전까지 근로자에게 연속하여 11시간 이상의 휴식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비현실적 조항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위급 환자가 있는 상황에서 의사가 근무시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퇴근하는 것은 직업윤리에 어긋나 지켜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건업이 근로시간 특례업종으로 분류된 이유이기도 하다.
◆ "인원 부족이라는 근본 문제 뿌리 뽑아야"
하지만 최근 두 의사가 잇따라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이제는 의료계 근무 환경을 본질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원 부족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보건의료노조가 보건업 종사자 2만962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의 81.8%가 "부서 내 인력이 부족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부서내 인력문제로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노동강도 심화'가 83.4%로 가장 컸고, '건강상태 악화'(76.1%), '사고위험 노출'(69.8%), '직원간 불협화음 및 갈등 심화'(48.6%) 등이 뒤를 이었다.
<자료=보건의료노조> |
보건의료노조는 "보건의료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심화, 의료서비스 질 저하 및 의료사고 발생 위험 등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며 "이는 인력부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로 발생하고 있는 악순환적 현상"이라고 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전공의들은 근로자이자 수련을 받는 교육생이라는 이중적 지위 때문에 1주일에 최대 88시간까지 근무하고 있다"며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적정한 근무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sunja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