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무엇이 대형병원 의사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가? 설 연휴 서울과 인천의 대형병원에서 두 명의 의사가 과로로 숨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앞서 정신과 진료를 받던 의사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각광받는 직업인 ‘대한민국 의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모든 의사들이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비상경보음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예견됐던 참사라는 자성론도 높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세계 11위 경제대국, 세계 6위 무역강국이란 대한민국 위상에 걸맞는 의료 시스템을 갖는 것이 아직은 요원한 꿈일까요?
아직도 후진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병원의 현실을 진단해 봅니다.
[서울=뉴스핌] 구윤모 기자 =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에 이어 인천 가천대 길병원에서 당직근무 중이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사망은 한국 의료체계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도마 위에 올랐다는 점이다. 미국 등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의료 환경의 열악함이 확연히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8일 오후 인천 남동구 가천대 길병원 응급실 전용 보호자 대기실에는 환자 면회를 위해 찾은 보호자들로 붐볐다. 안내 직원은 보호자 면회 가능 인원을 1명으로 제한했다. [사진=노해철 기자] 2019.02.08. sun90@newspim.com |
한국은 2017년부터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을 시행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병원은 전공의에게 1주일에 80시간까지 수련을 시킬 수 있고, 교육 목적으로 1주일에 8시간까지 근무를 연장할 수 있다. 16시간 이상 연속 수련을 한 전공의에게는 최소 10시간의 휴식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36시간을 초과한 근무를 시킬 수 없도록 규정했다.
이는 전공의가 주당 100시간을 넘게 일하거나 1주일 내내 당직 근무를 하는 등 과도한 근로시간으로 인해 각종 문제가 발생하자 만들어진 제도다.
그러나 한 달 최대 88시간 근무는 물론 36시간 연속 근무 등 여전히 근무 강도가 강하고,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문제가 의학계 내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반면 의료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의 경우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을 철저히 준수하며 합리적인 의료체계를 확립했다.
뉴욕의대(New York Medical College) 응급의학과 전혜영 조교수는 지난달 26일 청년의사와 연세의대가 공동주최한 ‘미국에서 의사하기’ 컨퍼런스에서 미국 의사커뮤니티인 메드스케이프(MedScape)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국 전공의의 52%는 주당 근무시간이 60시간이 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당 51~60시간 근무하는 전공의는 20%, 41~50시간 근무 전공의는 15% 수준이었다.
미국은 2003년부터 환자보호 차원에서 전공의근무시간을 주당 80시간 이하로 제한하는 법률 규정을 마련해 운영해왔다.
또한 △전문의 주당 80시간, 인턴 주당 60시간 근무시간 초과 금지 △24시간 근무 시 14시간 이내 재근무 금지 △당직근무 후 10시간 이상 휴식 보장 △7일에 한 번 24시간 완전휴무 제공 등의 내용을 담은 미국전공의 교육위원회의 규정을 2011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유럽도 ‘전공의에 대한 유럽 근로기준’에 따라 근무시간을 주당 48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일본도 평균 45시간 수준인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은 여전히 열악한 수준임을 짐작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간호사 수는 각각 2.2명, 5.9명으로 OECD 평균(3.4명, 9.0명)보다 현저히 부족한 수준이다.
특히 '2017 응급의료 통계연보'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우리나라 응급의학전문의 수는 3.3명에 불과, 미국의 1/3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상대적으로 의료인력이 풍부한 미국의 경우, 각 병원 응급의료센터 전문의들이 일주일에 3~4일, 한 달에 10회 안팎의 유동적인 근무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응급의료센터의 만성적인 인력 부족 현상이 이번 사태를 촉발했다는 분석이 가능한 이유다.
대한의사협회는 “두 명의 회원 모두 의료 현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다 숨진 것”이라며 “의사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의료체계 근본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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