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세원 기자 = 중국의 통신장비 제조업체 화웨이가 연이은 악재로 위기 상황에 놓인 원인으로는 홍보(PR) 전략 실패와 외국인 직원의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은 탓도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지난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화웨이의 창업자인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화웨이를 "무너뜨릴 수 없다"고 강조하며 "서방에서 불빛이 꺼지면, 동방이 빛난다. 미국은 전 세계를 대표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런정페이 회장은 평소 언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화웨이 배제 움직임이 나오는 등 업체를 둘러싼 압박 수위가 높아지자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화웨이에서 한때 대외업무 담당 부사장을 맡았던 윌리엄 플러머는 런정페이 회장의 강한 어조를 꼬집으며, 화웨이의 위기 대처 방식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윌리엄 플러머 전 부사장과 화웨이에 PR 전략과 관련해 조언을 한 경험이 있는 외국인들은 런정페이 회장의 독선적인 어투는 좋지 않은 시기에 좋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플러머 전 부사장은 "5년 전이라면 이 같은 방식이 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좋은 생각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재 화웨이는 최고재무책임자(CFO) 멍완저우(孟晚舟)가 미국의 대(對) 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체포되고, 보안 우려를 근거로 장비 배제 움직임이 일어나는 등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이달 초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페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모바일 박람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를 앞두고 자국의 무선네트워크에 중국 통신업체의 장비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까지도 나왔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이 21일 트위터에 "미국이 기존의 최첨단 기술을 차단하지 않고, 경쟁을 통해 승리하는 것을 원한다"고 적으면서 화웨이에 일종의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지만, 화웨이가 위기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지난해까지 화웨이와 일했던 로비업체의 고위급 관계자는 "화웨이가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면서 "최선의 방법은 위기관리지만 화웨이는 이미지 관리에 있어서 일관되고, 전략적인 방침을 고수한 적이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통신장비 제조업체 화웨이 로고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과거 화웨이와 일했던 PR전문가들은 화웨이에 대한 충고가 부족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990년대 화웨이는 서방에서 내로라하는 컨설턴트를 고용한 전력이 있다. IBM은 화웨이의 경영 현대화를 도왔다. 미 네트워크 장비업체 쓰리콤(3Com)과의 인수합병(M&A)을 시도했을 당시 화웨이를 도운 파트너로는 베인캐피탈이 있다. 이 외에도 화웨이는 코헨그룹부터 글로벌 홍보회사인 오길비, 에델만, BCW 등과 함께한 바 있다.
다만 외부 컨설턴트와 전직 관리들은 화웨이가 중요한 순간마다 이들의 충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플러머 전 부사장은 "비중국인에 대한 신뢰가 근본적으로 항상 부족했다. 가이던스를 제공하면 정기적으로 비난받았다"고 지적했다.
화웨이는 지난 2010년 미국 통신사 스프린트 넥스텔에 대한 통신장비 입찰을 참여한 적 있다. 보안 문제를 불식시키기 위해 제3자를 걸쳐 스프린트에 설비를 납품하는 방안이 제기됐지만, 이때도 화웨이에서는 자신들의 체계를 고집했다. 이를 두고 사안에 대해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화웨이가 당시 신뢰를 구축할 기회를 놓쳤다고 평가했다.
이 외에도 플러머는 지난해 9월 출판된 저서를 통해 해외 법인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현지 고위급 직원들이 배제됐다고 꼬집었다. 플러머는 런정페이 회장을 두려워한 중국 경영진이 현지 시장에서 고위급 관리자들을 끊임없이 비난했으며, 해외에서의 홍보 및 로비 방안에도 혼선을 불어넣었다고 강조했다.
화웨이 내부에서 중국과 해외 직원들의 깊은 갈등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플러머는 런 회장이 중국과 해외에서 다른 방식으로 회사를 대표할 것을 조언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PR의 핵심은 진실성이다. 우리는 언제나 진실을 전달해야 한다"면서 지난 2014년 런정페이 회장이 내부 회의에서 경영진에게 "중국에서는 공산당을 지지한다고 말하고, 해외에서는 화웨이가 항상 국제적인 흐름을 따르고 있다고 강조하라"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반면 화웨이 측은 런 회장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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