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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중독자의 고백⑳] 검찰의 첫 마약범죄자금 추적기

기사등록 : 2019-05-2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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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마약류 공급조직의 자금추적 수사 보고서’ 단독 입수
2000년대 초반 국내 최초 마약범죄자금 추적 기록 분석
중국산 필로폰 밀수·밀매조직 10개파 224명 적발..필로폰 8㎏압수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마약 안전지대인가? 아닙니다. 마약 청정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이 최근 증명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한 해 마약사범만 1만2000명, 많게는 1만6000명이 검거되고 있는 마약 오염국입니다. 최근 재벌가를 비롯해 연예인들의 마약투약 사실이 줄줄이 적발되면서 모방범죄도 우려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문제는 마약의 위험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독증상’이라는 추상적인 부작용만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마약의 실상과 위험은 무엇일까? 뉴스핌은 마약중독자와 그 가족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직접 쓴 수기를 입수해 연중기획으로 보도합니다. 건강한 삶과 가정을 마약이 어떻게 파괴하는지, 마약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과거 마약 수사는 주로 ‘마약사범’만을 붙잡는 식으로 이뤄졌다. 판매책과 구매자를 수사하고 상선을 추적하는 단순한 구조다. 하지만 ‘꼬리 자르기식’ 수사에 그치는 등 한계가 명확했다.

결국 조직원은 수시로 경찰에 붙잡히지만 마약범죄조직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또 막대한 자금을 통해 경찰에 붙잡힌 조직원을 비호하는 것 역시 수사 당국으로서는 골칫거리였다.

마약범죄조직은 유통책, 판매책 등이 경찰에 붙잡히면 변호사 선임비 등 일체의 비용을 지원했다. 출소한 조직원에게는 보상도 뒤따랐다. 경찰 조사에서 조직의 총책 등 ‘상선’을 불지 않은 대가였다. 모두 마약범죄조직이 손에 쥔 범죄자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검찰 /김학선 기자 yooksa@

하지만 2000년대 초반 검찰이 마약범죄조직의 자금을 찾기 위해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마약범죄자금 추적’이다. 뉴스핌이 단독으로 입수한 검찰의 ‘마약류 공급조직의 자금추적 수사 보고서’ 자료를 통해 검찰의 치열했던 당시를 쫓아가 봤다.

◆‘10개 계좌’ 자금추적의 시작

2001년 10월 서울지방검찰청(현 서울중앙지검) 마약수사부 사무실. 한 필로폰 공급사범을 조사하던 검찰은 수상한 계좌 10여 개를 발견한다. 마약범죄조직 사이에서 비교적 안전한 거래방법으로 통했던 ‘차명계좌’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이전까지 마약 거래는 주로 현장에서의 ‘대면 거래’로 이뤄졌으며 계좌를 이용한 거래는 전무했다.

계좌를 수사하던 서울지검은 ‘대형 사건’임을 직감하고 2002년 4월 마약수사부 내에 ‘계좌추적전담팀’을 꾸리고 본격적인 추적에 들어갔다.

검찰은 먼저 해당 계좌와 연결계좌를 찾아내기 위해 입출금 내역과 입출금 관련 전표 등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다. 범죄자금에 이용되는 계좌의 경우, 다른 계좌들과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영장을 발부받은 검찰은 은행 본점 전산부에 공문을 보내 해당 계좌의 개설일부터 현재까지의 거래 내역을 송부받았다. 은행에서는 창구 이체, 자동화 기기 이체 등 송금방법과 송금지점, 자동화기기의 위치까지도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수사팀은 이를 통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송금했는지 그 흔적을 하나씩 더듬어 나갔다. 검찰의 예상대로 계좌들과 연결된 다른 계좌들이 줄줄이 고구마처럼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동시에 검찰은 송금자에 대한 인적사항을 파악하는 작업에도 돌입했다. 송금자가 당시 작성한 서류와 이들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거래가 이뤄진 각 지점에 공문을 보냈다. 일반적으로 통장 개설자와 사용자가 다른 탓에 송금자를 파악하는 일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확보한 사진은 ‘정보원’을 통한 확인 과정을 거쳤다.

서울중앙지검 /김학선 기자 yooksa@

검찰은 또 해당 정보를 기초로 △범죄경력 △주민등록등본 △휴대전화 가입 내역 등을 조회하고 검찰 내 마약사범 종합영상정보와 대조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실제 입금자를 찾아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후 주소와 동종범죄경력 여부, 주거지, 가족 사항, 사진 등까지 파악되면서 국내 마약 밀수·밀매 조직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검찰은 수사망을 좁혀 본격적으로 조직원들을 검거했다. 당시 검찰은 강도 높은 압수수색과 소변검사 등으로 철저한 증거수집에 집중했는데, 이는 추후 이뤄질 조사를 위한 사전작업이었다. 구체적인 범죄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해당 계좌를 이용한 당사자의 진술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수사 당국이 부인하기 어려울 정도의 범행 증거를 확보했을 경우, 대부분은 상세한 밀매 경위를 털어놓는다. 아울러 검찰은 당시 수사에서 실계좌주를 잡지 못한 경우는 입금주 1~2명의 협조를 받아 다른 피의자들의 범행 내용을 파악하는 방법을 활용했다.

마침내 검찰은 장기간 마약범죄자금을 추적한 끝에 국내 유명 밀수·밀매 조직 10여 개의 계보도를 모두 파악하고 이들을 일망타진하는 성과를 올렸다. 국내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던 최대 규모의 사건이었다.

◆드러난 마약범죄조직의 실체

검찰이 계좌추적 수사를 통해 적발한 조직은 총 10개파 224명이었다. 이 중 162명이 구속됐고 57명에 대해 수배가 내려졌다. 필로폰 총 8㎏을 압수하는 성과도 올렸다. 특히 검찰은 붙잡힌 마약범죄조직이 해외로 빼돌린 필로폰 밀수대금의 계좌와 범죄수익을 끝까지 추적해 몰수하기도 했다.

검찰은 보고서를 통해 이 사건을 “중국산 필로폰 밀수·밀매조직 10개파에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요 밀수·밀매사범 대부분이 포함돼 있고 적발 인원만 224명, 거래 규모 필로폰 48㎏(약 160만여 명 투약분, 소매 시가 1600억원 상당)에 이르는 등 양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최대 규모의 밀수·밀매조직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서울지방검찰청(현 서울중앙지검)의 ‘마약류 공급조직의 자금추적 수사 보고서’ 중 일부. [사진=임성봉 기자]

대규모 검거 작전에 따라 마약공급 루트가 차단되면서 필로폰 거래가 극도로 위축되기도 했다. 검거 작전 직전 필로폰 가격은 100g당 600만~700만원 선이었으나 검거 이후 1000만원 이상으로 치솟기도 했다.

검찰의 해당 수사는 서울지검 마약수사부 외에 검찰 내 광역공조 수사가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계좌추적 수사의 교범’으로 불리고 있다.

서울지검 마약수사부는 계좌추적 수사를 벌이면서 대구·수원·인천지검과 성남·의정부지청, 대구지방경찰청 등과 적극적인 공조수사를 통해 전국에 걸쳐 광역 수사를 전개했다. 특히 대구지검과 대구지방경찰청은 서울지검 마약수사부의 지명수배자였던 A씨를 검거해 신병을 인계했고 인천지검과 의정부지청은 계좌추적팀에 직원을 파견했다.

대검찰청 마약수사부 역시 수사결과를 바탕으로 전국 검찰청에 주요 공급사범에 대해 검거 지시를 내리는 등 마약사범 발본색원에 나서기도 했다.

또 검찰은 해외로 도주한 조직원들을 붙잡기 위해 중국 공안부, 태국 마약청, 일본 경찰청과 공조해 해외체류 기소중지자와 범죄인인도청구 대상자의 송환도 추진했다.

이 수사는 마약 거래 관련자 일부만을 검거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장기간의 계좌추적과 검거 활동을 통해 소매상에서 밀수책까지 조직원 전체를 검거하는 성과를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피의자의 진술에만 의존하지 않고 계좌추적자료를 근거로 한 객관적인 수사가 가능했다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검찰은 보고서에서 “마약사범이 조직화, 국제화, 전문화되는 추세에 따라 종래의 단편적인 투망식 수사기법을 지양하고 장기간에 걸친 기획수사를 통해 마약류의 공급경로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발본색원하는 등 마약수사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 마약에 중독됐을 경우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를 통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국립부곡병원 △시립은평병원 △중독재활센터 등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imbo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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