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노민호 기자 =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은 4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한국이 인공지능(AI) 분야에서 1등 국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한국이 지난 20여년 간 초고속 인터넷을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면 앞으로 AI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을 배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고 강하게 역설했다.
손 회장은 특히 “앞으로 한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첫째도 인공지능, 둘째도 인공지능, 셋째도 인공지능”이라며 반복 어법을 사용, 문 대통령에게 AI 분야의 집중 투자를 요청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이날 기자들에게 배포한 서면브리핑에 따르면 문 대통령과 손 회장은 이날 오후 2시부터 1시간 30분동안 청와대 본관에서 만났다. 접견시간은 당초 40분이었지만 무려 50분이나 넘겨 1시간 30분 간 심도 깊은 대화가 이뤄졌다.
문 대통령이 공식 접견시간을 1시간 가까이 늘린 것은 사실상 취임 이후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참모들도 면담시간이 지났지만 두 사람의 대화를 중단시키지 못할 만큼 대화는 진지하게 이뤄졌다.
문 대통령과 손 회장의 면담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허심탄회하게 진행됐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서울=뉴스핌]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오후 청와대 집현실에서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2019.07.04 photo@newspim.com |
문 대통령은 만난 손 회장은 지난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초고속인터넷 아이디어를 제안했던 때를 화두로 꺼냈다.
손 회장은 "현재 한국이 초고속 인터넷, 모바일 인터넷 세계 1위 국가로 성장했다"며 "수많은 IT 우수기업이 배출돼 기쁘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이어 "지난 20년간 1인당 GDP가 일본이 1.2배, 미국이 1.8배 성장할 동안 한국은 3.7배나 성장한 것은 초고속 인터넷에 대한 과감하고 시의적절한 투자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 시대의 비전은 AI"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AI는 인류역사상 최대 수준의 혁명을 불러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 회장은 특히 "젊은 기업가들은 열정과 아이디어가 있지만 자금이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이 탄생할 수 있도록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한 "이를 통해 투자된 기업은 매출이 늘고 일자리 창출을 가져올 것"이라며 "AI 투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확장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 회장은 이날 면담에서 문 대통령에게 AI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심지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AI"라고 동어를 반복하면서까지 거듭 강조했을 정도다.
청와대에 따르면 대통령을 앞에 두고 같은 말이나 단어를 이 정도로 강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손 회장이 한국의 앞날에 대해 초고속인터넷에 이은 AI의 시대가 올 것으로 확신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손 회장의 조언을 들은 문 대통령은 소프트뱅크의 적극적인 한국 투자를 요청하며, AI 전문인력 양성 분야에도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대기업은 자금력이 있어 스스로 투자가 가능하지만 혁신벤처 창업가들은 자금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특히 젊은 창업가들에게 투자해달라"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오후 청와대 집현실에서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을 접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2019.07.04 photo@newspim.com |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한국 시장의 규모는 한계가 있어 글로벌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며 "소프트뱅크가 가지고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이용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부탁한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이에 흔쾌히 "I will(그렇게 하겠다)"이라며 "한국이 AI 후발국이지만 한발 한발 따라잡는 전략보다는 한 번에 따라잡는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이 AI 분야에서 늦게 출발했을 수 있지만 강점도 많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5G 세계 최초 상용화를 이뤘다"며 AI분야에 대한 투자를 다시 한 번 당부했다.
손 회장은 "세계가 한국의 AI에 투자하도록 돕겠다"며 "한국도 세계 1등 기업에 투자하는 게 'AI 1등 국가'가 되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스핌]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오후 청와대 집현실에서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청와대] 2019.07.04 photo@newspim.com |
문 대통령은 이와 함께 지난 2012년 국회의원 신분으로 소프트뱅크 본사를 방문했던 기억을 더듬으며 손 회장의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상을 듣고 큰 영감을 받았던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는는 한국과 일본의 전력망을 중국, 몽골, 러시아와 연결해 이들의 재생 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공급 받는다는 내용이다.
문 대통령은 "동북아 슈퍼그리드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며 동북아철도 공동체가 동북아에너지공동체로, 그리고 동북아경제공동체로, 다자안보공동체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접견은 일본의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로 한일 갈등 고조될 분위기가 감지되는 과정에서 이뤄져 더욱 주목받았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손 회장으로부터 일본 정부의 기류와 한일관계 발전 방향에 대한 모종의 발언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하지만 청와대가 공개한 접견 내용에는 한일관계에 대한 내용은 일체 포함되지 않았다.
이날 접견 자리에는 손 회장과 함께 소프트뱅크 측에서 카츠노리 사고 부사장, 문규학 고문 등이 배석했다. 정부에서는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함께 했다.
청와대에서는 노영민 비서실장·김상조 정책실장·이호승 경제수석·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주형철 경제보좌관·이공주 과학기술보좌관 등이 배석했다.
사회를 맡은 김상조 정책실장은 "오늘은 한국 경제, 더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날"이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글로벌 리더 중에 한 분인 손 회장을 모시고 여러 가지 조언을 듣고, 한국 정부와의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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