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홍콩 달러 숏 베팅에 나선 월가의 구루들이 체면을 구겼다.
과격 시위에 따른 자금 이탈과 경기 침체 위기 속에서도 홍콩 달러화가 페그제 범위 안에서 강한 저항력을 보이고 있기 때문.
가면과 복면을 쓰고 거리에 나선 홍콩 시위대 [사진=로이터 뉴스핌] |
정치적 리스크가 고조, 자금 이탈을 가속화하는 한편 홍콩과 미국의 금리 스프레드를 확대해 홍콩 달러화의 페그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월가 투기 세력이 보기좋게 빗나갔다는 평가다.
9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6월 범죄인 인도 법안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본격화된 이후 홍콩 달러화는 금융당국이 정한 변동폭 달러 당 7.75~7.85 홍콩 달러에서 안정적인 등락을 유지하고 있다.
소매업과 관광업을 중심으로 실물경기가 곤두박질치는 한편 자금 유출이 가시화됐지만 홍콩 달러화는 페그제 상단인 7.85달러를 단 한 번도 뚫고 오르지 않았다.
헤이만 캐피탈 매니지먼트를 포함해 홍콩 달러화를 공격적으로 숏 베팅한 헤지펀드 업계는 당혹스럽다는 표정이다.
경제 펀더멘털을 감안할 때 홍콩 통화의 저항력이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지난 2분기 마이너스 0.4% 성장률을 기록한 홍콩 경제는 3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률이 확실시되는 상황.
공식적으로 침체에 진입하게 되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이 같은 경기 한파는 통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악재에 해당한다.
자본 유출 역시 홍콩 달러화에 하락 압박을 가하는 요인이다. 정치적 리스크가 고조된 데 따라 홍콩의 부호들이 자금을 싱가포르를 포함한 해외로 옮기고 있고, 이는 헤지펀드 업계의 숏 베팅을 부추겼다.
월가의 투기 세력은 이와 함께 홍콩과 미국의 금리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서 금융 당국이 페그제를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홍콩 은행간 금리가 미국에 비해 크게 떨어질 경우 홍콩 달러화를 매도하고 미 달러화 자산을 매입하는 전략으로 쏠쏠한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전망은 빗나갔다. 지난 2월 동일 만기의 미국 은행간 금리에 비해 1.6%포인트 아래로 떨어졌던 홍콩의 금리 차이가 최근 0.25%포인트로 좁혀진 것.
홍콩에서 자금 유출이 전개되고 있지만 통화 가치를 강타할 만큼 규모가 크지 않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는 홍콩 달러 하락 베팅을 둘러싼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토론토 도미니언 뱅크의 미툴 코테차 신흥국 전략가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홍콩 달러화의 페그제가 단단하게 통제되고 있다”며 “최근 4개월 동안 극심한 혼란과 경기 하강 기류를 버텨낸 만큼 앞으로도 환율이 페그제 상단을 뚫고 오를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홍콩 경제를 둘러싼 월가의 전망은 잿빛이다. JP모간이 올해 홍콩의 성장률이 0.3%를 기록해 2008년 이후 최저치로 후퇴할 가능성을 제시했고, 그 밖에 주요 투자은행(IB)이 일제히 1% 미만의 저성장을 점치고 있다.
주요 경제 지표의 악화는 이 같은 전망에 무게를 실어준다. 지난 8월 홍콩 소매 판매가 전년 동기에 비해 23% 급감했고, 같은 기간 여행자 수는 40% 줄어들었다. 지난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확산 이후 최악의 결과다.
시위에 따른 충격이 숙박과 소매 및 외식, 운송 업계 등 주요 산업 전반으로 번지면서 중소기업 경기신뢰가 8월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고, 올해 홍콩의 수출은 4% 감소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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