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노민호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의 어머니 강한옥 여사가 29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문 대통령은 그동안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표현해 왔다.
피난민의 신분으로 모진 가난을 극복하며 보여준 '희생'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생전 강 여사에 대해 밝힌 '회상'(回想)을 정리해봤다.
지난 2017년 여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한 강한옥(왼쪽) 여사의 손을 잡고 청와대 내부를 걷고 있는 모습. 한편 해당 사진은 주영훈 청와대 경호처장이 2017년 10월 4일 추석을 맞아 페이스북에 추석 인사 글을 올리며 첨부한 내용 중 일부다.[사진=청와대 페이스북] |
◆이남에서 혈혈단신…계란팔이·연탄배달과 가난
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에는 어머니가 자주 등장한다. 강 여사는 한국전쟁 중인 1950년 12월 함경남도 흥남에서 경남 거제도로 피난했다.
다만 강 여사는 집안사람들과 함께 내려오지 못했다. 문 대통령의 외가는 성천강 바로 옆에 있었는데 미군이 흥남으로 들어오는 '군자교' 다리를 막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어머니는 이남에서 혈혈단신이었다"며 "(어머니는) '파난살이가 너무 힘들고 고달파서 도망가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 세상천지에 기댈 데가 없어서 도망가지 못했다'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셨다"고 설명했다.
강 여사는 '제2의 터전'인 거제에서 계란 팔이와 시장 좌판에서 구호물자 옷가지 판매, 동네 구멍가게 운영, 연탄배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 강 여사가 기댄 곳은 종교였다. 천주교 신자로서 영도에 있는 신선성당을 다녔다.
문 대통령은 "신앙심이 깊은 데다 워낙 오래 다녔기 때문에 사목회 여성부회장을 하기도 했고, 성당의 신용협동조합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아들 보려 호송차 뒤쫓은 어머니
강 여사는 유신정권 시절 문 대통령이 겪은 '고초'에 대한 회고 과정에서도 등장한다.
지난 1975년 문 대통령은 경희대학교 총학생회 총무부장을 맡았다. 문 대통령은 당시 반(反)유신정권 운동으로 경찰에 체포됐다.
이 과정에서 가족의 면회는 이뤄지지 않았다. 강 여사는 '아들이 검찰로 호송된다'는 말을 듣고 일찍부터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강 여사는 호송차량에 탑승하기 전 아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어머니는 100원짜리 동전만한 구멍이 숭숭 뚫린 호송차에서라도 아들을 보려했다"며 "어머니는 차가 출발하는 순간 차 뒤를 따라 달려오며 팔을 휘저으며 '재인아 재인아' 불렀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나는 그것도 모른 채 올라타느라 어머니와 눈도 맞추지 못했다"며 "마치 영화 장면 같은 그 순간이 지금까지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혼자서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금강산=뉴스핌] 사진공동취재단 =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2회차 상봉행사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
◆54년 만에 北에 있는 가족과 만난 어머니
강 여사는 지난 2004년 7월 제1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북한의 여동생을 만났다. 6남매의 장녀였던 강 여사가 마지막 남은 혈육인 막내 여동생을 만난 것이다.
강 여사는 노태우 정부 때부터 이산가족 상봉행사 신청을 했다. 하지만 번번이 무산됐고, 2004년 상봉행사는 북측의 여동생이 한 신청이 뽑혀 54년 만의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어머니가) 상봉가족으로 선정된 것은 내가 청와대를 떠나 있을 때였는데, 행사는 시민사회수석이 된 후 열렸다"며 "금강산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가 이모를 만나는 기쁨을 누렸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지난달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마 평생 어머니께 제일 효도했던 것이 이때(이산가족) 어머니를 모시고 갔던 게 아닌가 싶다"며 "처음에 이모님이 오시는데 정작 우리 어머님은 금방 알아보지 못했지만 저는 척 보고 알았다. 우리 어머니의 그 연세 때 그 모습과 똑같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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