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현석 기자 = 수백억원대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故)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넷째 아들 정한근 씨가 "재산국외도피죄는 200만달러에만 적용돼야 한다"며 혐의를 인정한다던 기존 입장을 선회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윤종섭 부장판사)는 27일 오후 2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재산국외도피) 등 혐의로 기소된 정 씨의 3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이형석 기자 leehs@ |
정 씨 측 변호인은 "공소사실에는 2680만달러가 재산국외도피된 것으로 나오지만 법령 적용에 대해 다시 검토해야 한다"며 "200만달러에 대해서만 재산국외도피죄가 성립돼야 한다는 것이 피고 측 주장이다"고 밝혔다.
이어 "변호인 측과 마찬가지로 검사도 과거 법 규정을 다 찾아보지 않은 상황에서 법령 적용이 그대로 적용돼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며 "피고인이 (혐의를) 인정한다고 하니 그것을 기준으로 의견을 냈지만 법령 적용에 대해 다시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앞서 정 씨 측은 지난 9월 열린 첫 공판기일에서 '검찰이 진술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 것이 맞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그렇다"며 모든 혐의를 인정하는 취지로 답한 바 있다.
정 씨 측 변호인은 사실관계에 대해 인정하는 입장은 기존과 비슷하지만 자료를 추가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관련 법령 적용에 있어 방어권을 행사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는 입장이다.
한편 검찰은 주식 추가 매각 대금과 관련해 정 씨에 대해 2차 추가 기소할 방침이다.
검찰은 "수사 중인 상황이라 구체적인 내용이나 기소 시기를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12월 첫 주에서 둘째 주 정도에 (수사가) 다 완료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언급했다.
검찰은 공판준비기일 절차 때부터 정 씨가 러시아 석유회사로부터 취득한 주식 27.5% 중 한보 부도 사태 이듬해 20%를 매각한 사실과 관련해 "2001년 나머지 7.5%도 매각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이와 관련해 공소장 변경과 추가 병합 기소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법원은 이날 서증조사와 양형심리, 피고인 신문을 거쳐 심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검찰이 정 씨에 대한 추가 기소 입장을 밝히면서 기일을 속행하기로 결정했다.
또 법원은 12월 21일 만료 예정인 정 씨의 구속 기간을 6개월 더 연장할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검찰의 추가 기소를 앞둔 상황에 정 씨 사건에 대해 충분히 심리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재판부는 "우선 2차 추가 기소에 대한 검토와 그에 따른 전체 양형심리를 위해 공판기일을 속행하기로 하겠다"며 "다음 기일에 추가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심문기일도 함께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 씨는 1997년 자신이 실소유주인 동아시아가스주식회사(EAGC)가 갖고 있던 러시아 석유회사 주식 900만주를 5790만 달러에 매각하고도 2520만 달러에 매각한 것처럼 꾸며 320억여원 상당을 횡령하고 해외에 은닉한 혐의를 받는다.
다만 검찰은 이 가운데 60억여원은 공범들이 정 씨 몰래 빼돌린 것이라는 정 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혐의액에서 제외했다.
또 당국의 허가 없이 외국으로 돈을 지급한 혐의(외국환관리법위반)와 해외 도피 과정에서 서류를 위조한 공문서위조 혐의도 적용됐다.
정 씨는 수사를 받던 중 1998년 6월 해외로 잠적했다. 이에 검찰은 2008년 9월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정 씨를 불구속기소 했다. 이후 정 씨는 지난 6월 에콰도르에서 체포돼 국내로 송환됐고 재판이 시작됐다.
정 씨의 다음 재판은 12월18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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