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신정 기자 = 파생결합펀드(DLF)의 불완전판매로 금융감독원(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에게 문책경고를 내리면서 이제 시선은 '키'를 쥔 금융위원회로 쏠리고 있다. 이번 경영진에 대한 징계는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전결로 확정되는 사안이지만, 기관에 대한 징계는 금융위의 승인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르면 행장 문책경고는 금감원장 전결사항인 반면 지주회장 문책경고는 금융위 보고사항으로 돼 있다. 손 회장과 함 부회장 모두 DLF판매 당시 행장이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징계는 윤 원장의 전결로 결정된다.
하지만 은행과 경영진에 대한 중징계가 공식 통보되는 시점이 금융위의 기관 제재 승인 후 발효되기 때문에 오는 3월 주주총회를 앞둔 우리금융 손 회장의 운명은 금융위의 손에 달리게 됐다. 특히 최근 금감원과 금융위 간 갈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위가 금감원의 이번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관심사다.
31일 금감원에 따르면 제재심은 전날 늦은 저녁 손 회장에 문책경고를, 함 부회장에는 문책경고 상당으로 중징계를 결정했다. 문책경고는 정직, 해임권고와 함께 중징계로 분류된다. 지성규 현 하나은행장은 주의적경고를 받았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에 대해선 6개월간 일부 업무정지와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은성수 금융위원장(왼쪽)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관련 금융권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2019.12.16 mironj19@newspim.com |
그동안 윤 원장이 DLF와 관련 제재심의 결정을 최대한 수용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제재심의 의견을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제재심은 금융회사와 그 임직원의 제재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설치된 금감원장의 '자문기구'로 의견을 참고할 수 있다.
이번 DLF제재에서 눈여겨 봐야할 점은 경영진의 제재안 근거 법안의 유무다. 금감원 조사부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내부 통제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은행 경영진들을 징계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은행측은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의 관련 조항은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할 것을 적시한 것인데, 실제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해놓고 있다며 항변해왔다. 또 많은 상품을 판매하는데 문제가 생길 때마다 경영진에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상식에도 맞지 않다는 논리를 폈다.
실제 금융위도 불완전 판매와 관련 경영진에 대한 제재 여부 근거가 미흡하다는데 공감하고 있다. 내부통제에 대한 CEO 책임을 규정하는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금융권 안팎에선 금감원과 금융위 신경전이 또 시작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최근 금감원 부원장 인사를 두고 윤 원장과 은 원장이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한데다, 윤 원장이 취임한 이후 두 기관 사이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다.
앞서 금감원과 금융위는 금감원의 종합검사 부활과 금융사 노동이사제(노조추천이사제) 도입 등 여러 현안을 놓고 충돌했다. 지난 23일 금감원이 부원장급 인사가 아닌 아래 직급 인사부터 단행한 것도 이런 맥락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 성향 학자 출신인 윤 원장과 고위 관료 출신인 은 원장의 신경전이 계속되면서 정치권 안팎에선 윤 원장이 청와대에 입성한 진보 성향 학자 출신들의 지지를 얻어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상급기관인 금융위를 재끼고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권위를 세우려한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은행의 제재안에 대해 금융위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통상 경영진과 은행에 대한 징계가 동시에 통보되는 관례를 봤을때, 기관 제재 최종결정권을 쥔 금융위의 통보시점이 CEO에 대한 연임여부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오는 3월 주총에서 연임이 유력시 됐던 우리은행 손 회장의 운명이 금융위의 손에 달린 셈이다.
또 은행들도 금감원 제재안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앞서 지난 2014년 금감원으로부터 직무정지 제재를 받은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은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본안소송 등을 제기해 법적 대응에 나섰다. 당시 금융위와 금감원은 사이가 나쁘지 않아 금감원 결정을 금융위가 바로 수용했다. 결국 임 전 회장은 KB금융 이사회가 나서 해임을 의결하면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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