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허고운 기자 = 북한 비핵화의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올 것으로 기대를 모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소득 없이 끝난 지 1년이 지나는 동안 당시 협상 주역들은 대부분 직책을 옮겼다. 북미 양측 모두 협상에 불만이 컸다는 반증일 수 있지만 향후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생소한 만남'이 불가피해 논의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미국 국무부의 대북 협상 라인에는 최근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비핵화 문제에서 상당한 전권을 위임받고 실무협상을 주도했던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는 지난해 12월 국무부 부장관으로 승진했다.
지난 2019년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열린 북미 확대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과 배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로이터 뉴스핌> |
◆ 폼페이오·비건, 장관·부장관으로 국무부 지켜
비건 부장관은 대북특별대표직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제는 세계 곳곳의 외교 문제에 신경 써야 할 위치에 있어 북한 문제에 집중하기 어려워졌다.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질 때마다 남북한은 물론 중국, 일본 등을 찾아 국제공조를 통한 돌파를 노려온 비건 대표였기에 비핵화 논의 진전이 느려질 수밖에 없다.
다만 비건 부장관은 승진 이후 "앞으로도 한반도 문제 진전을 위해 최고의 관심을 갖겠다"며 의지를 피력한 만큼 북미대화가 재개되면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는 지난 1월에도 미국 워싱턴에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갖고 남북관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항구적인 평화 정착 등을 주제로 논의했다.
비건 대표와 함께 대북 외교를 담당하던 마크 램버트 전 국무부 대북특사는 유엔 '다자간 연대' 특사로 임명됐고, 알렉스 웡 대북특별부대표 겸 북한 담당 부차관보는 유엔 특별 정무 차석대사로 지명됐다. 특히 웡 부대표는 지난 9일 방한해 우리 정부와 북한 관련 사안을 논의하는 등 대북 업무를 사실상 총괄하고 있었던 만큼 그의 부재가 부정적 여파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비건 부장관이 대북특별대표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이 재개된다면 팀원들을 불러 모을 수 있겠지만 램버트와 웡 모두 본인들의 업무가 있어 복귀가 쉬워 보이지 않는다"며 "전반적으로 미국은 협상을 장기전으로 보고 북한 문제 비중을 줄였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무부의 수장인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은 상원의원 출마 가능성이 점쳐졌으나 일단은 남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다만 후보 등록 기간이 오는 6월까지이며 공화당 내부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출마하면 경선에서 쉽게 승리할 것이란 예측이 나와 국무부를 떠날 가능성이 살아있다.
북한이 극도로 반대하는 '선(先) 비핵화·후(後) 제재완화'를 강조해온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의견 차이를 여러 차례 연출하다 지난해 9월 경질됐다. 볼턴 전 보좌관은 이후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실패는 필연적"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지난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의 확대 회담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북한 협상팀. 이 자리에 있었던 김영철, 리수용, 최선희 중 현재도 직책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최선희가 유일하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김영철·리수용·리용호 대미협상서 사실상 빠져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북한 외교라인은 대폭 물갈이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측근으로 외교 중책을 맡아온 리수용 전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은 김형준 전 러시아 대사로 전격 교체됐고, 리용호 전 외무상의 자리는 군부 출신에 대남 업무를 담당해온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꿰찼다. 리수용과 리용호는 각각 85세·63세로 문책성 경질 혹은 세대 교체 차원의 인사로 보인다.
하노이 정상회담은 물론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협상 사령탑 역할을 했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통일전선부장 자리를 장금철에게 넘겨줬다. 김 부위원장은 이후에도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직책을 유지하고 있으나 협상 주도권을 외무성에 빼앗긴 것으로 분석된다.
외무성에서 북미 협상을 주도하는 실세는 최선희 제1부상이다. 최영림 전 북한 내각총리의 수양딸인 최 부상의 공식 직책은 차관급이지만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의 주요 성명 발표를 도맡아 하는 등 장관급 이상의 위상을 보이고 있다. 비건 부장관이 지난해 12월 한국을 찾았을 때도 자신의 카운터파트를 최 부상으로 지목하며 판문점 회동을 요청한 적 있다.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건 부장관과 실무협상을 벌였던 김혁철 전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는 김명길 전 베트남 대사에게 자리를 내준 이후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혁철은 비핵화 문제에 대한 충분한 협상 권한을 갖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후임인 김명길 역시 비슷한 상황에 있어 지난해 10월 비건 부장관과의 스웨덴 스톡홀름 실무협상에서 별다른 성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박 교수는 "현재 미국과 북한 모두 실무협상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있고 만약 성사된다면 비건 부장관과 최선희 부상의 사실상 고위급 회담을 거쳐 정상회담으로 갈 것"이라며 "다만 북한은 미국이 제재 완화를 먼저 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알고 있어 긴 호흡으로 미 대선 전후까지 바라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는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도 북미 협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외교 라인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교체될 가능성도 있어 북미 모두 협상 전략을 완전히 새로 마련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최고지도자 변동 가능성이 없는 북한으로서도 미국을 믿고 섣부른 합의를 도출하는 모험을 할 가능성이 낮다.
박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임한다면 협상 경험이 있고 기존 관료들이 있어 특별한 리뷰가 필요 없이 빨리 움직일 수 있지만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기면 빨라야 내년 상반기 이후 대화가 재개될 것"이라며 "경제가 뒷받침돼야 장기전으로 갈 수 있는 북한으로서는 코로나19라는 새로운 변수로 전략이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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