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사우디 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석유전쟁에 미국 셰일 업계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추가 감산을 둘러싼 마찰에서 비롯된 양국의 전면전이 실상 미국 셰일 업계를 겨냥한 것이라는 소위 음모론의 진위 여부를 떠나 관련 업체가 현실적인 위기에 직면했다는 진단이다.
셰일유 생산시설 [사진=블룸버그] |
크고 작은 프로젝트가 속속 중단되는 한편 정크본드 시장에서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에너지 업계의 디폴트 리스크가 급상승했고, 주가가 급락하는 가운데 투자는 물론이고 주주 환원을 축소하는 업체가 꼬리를 물고 있다.
12일(현지시각) 업계에 따르면 장 초반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6% 이상 급락하며 배럴당 30.82달러에 거래됐고, 국제 벤치마크 브렌트유 역시 7% 선에서 급락하며 배럴당 33.26달러를 나타냈다.
가뜩이나 사우디와 러시아의 석유전쟁에 유가가 자유낙하를 연출하는 상황에 트럼프 행정부의 여행 금지 조치에 패닉 매도가 쏟아졌다.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 셰일 업계가 유가 급락으로 인한 최대 희생양이라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 에너지 업계 싱크탱크인 '미국의 미래 에너지 안보(SAFE)'의 로비 다이아몬드 대표는 CNBC와 인터뷰에서 "이번 석유전쟁에서 패자는 사우디와 러시아가 아닌 미국"이라며 "사우디가 유가를 쥐락펴락하는 상황에 석유업계는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이 생산한 원유는 하루 770만배럴에 달했다. 이 가운데 셰일 업계의 비중이 63%를 차지했다.
대규모 셰일 프로젝트를 앞세워 업계가 산유량을 대폭 늘린 가운데 석유전쟁 속에 유가가 손익분기점을 하회, 거의 모든 신규 프로젝트에서 적자가 발생할 위기다.
셰일 데이터 업체인 프리조 루그리 오일 웰 파트너스의 톰 루그리 대표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현 수준의 유가에 셰일 유전을 계속 가동하는 것은 자본을 태우는 행위"라고 말했다.
실제로 다이아몬드백 에너지와 펄스 에너지 등 일부 업체는 이미 시추 예산을 대폭 축소한 한편 유정 가동을 중단하고 나섰다. 유가가 반등하지 않을 경우 엑손모빌을 포함한 공룡 업체들도 같은 행보를 취할 전망이다.
석유업계와 월가에서는 흉흉한 전망이 꼬리를 물고 있다.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하고, 한계 기업을 필두로 디폴트가 급증할 것이라는 경고다.
파이퍼 샌들러의 브래드 밀삽스 애널리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현 수준의 유가로는 미 셰일 업계가 충분한 현금흐름을 창출하기 어렵고, 운전자금부터 회사채 원리금 상환까지 막힐 여지가 높다"고 말했다.
이 경우 파장이 금융권까지 확산될 수 있어 투자자들은 바짝 긴장하는 표정이다. 최근 씨티뱅크와 웰스파고, JP모간 등 은행주 급락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증시 폭락 이외에 석유업계 디폴트 리스크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2020~2024년 사이 만기 도래하는 미국 에너지 업계의 회사채 물량은 86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대부분은 투기등급에 해당한다.
트럼프 행정부도 바짝 긴장하는 표정이다. 최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 셰일 업계 지원 방안이 검토되고 있고, 백악관도 이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다.
유가 향방에 대한 투자은행(IB) 업계의 전망은 다소 엇갈린다. 골드만 삭스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내리 꽂힐 것이라며 비관론에 힘을 실었고, JP모간은 이번 석유전쟁이 단시일 안에 종료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우디 역시 배럴당 60달러를 밑도는 유가를 견디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한편 석유업계 근로자들 사이에 역발상 투자가 월가의 시선을 끌고 있다. 로이터는 가뜩이나 관련 기업의 주가 급락에 퇴직연금(401K)에서 눈덩이 평가손실을 본 근로자들이 주식을 추가로 매입, 위험한 베팅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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