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뉴스핌] 김준희 기자 = '61년생 이형석'은 1980년 광주에 있었다. 5·18민주화운동이 있던 그해 대학 신입생이었다. 그는 광주에 얽힐 운명이었다. 광주은행 노조위원장을 하며 정치에 갈증을 느꼈고,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호남과 노동계 목소리를 냈다.
'광주 북구을' 후보로 나선 이형석 민주당 최고의원(58) 얘기다. 그는 두 번째 도전을 시작했다. 한 차례는 국민의당 광풍에 당선 기회를 놓쳤다. 민주당의 침체기였다. 안철수의 새정치와 호남홀대론이 민주당을 몰아세웠다. 많은 호남 정치인들이 국민의당으로 옮겼다. 이 최고위원은 당에 남아 초토화된 텃밭을 다시 가꿨다.
이 최고위원은 "흔들리지 않고 민주당을 지켜왔다"며 "그 기억이 지역민들에게도 남았다"고 자부했다. 이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이해찬 지도부에서 최고위원으로 지명됐다. 중앙무대에서도 목소리를 키우며 광주와 국회의 가교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40주년을 맞는 5·18기념식을 앞두고 민주당 특위위원장을 맡았다. 5·18 폄훼 발언을 처벌하는 5·18왜곡처벌법 발의를 포함해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이 최고위원은 자신에게 맡겨진 자리가 '숙명'이라고 강조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학과 직장, 정치 영역에서도 광주와 함께하고 있다"며 "이형석에게 광주는 희망"이라고 말했다. 시대적 아픔도 있었지만 광주 시민들의 선택은 늘 옳았다고 믿는다. 그의 선거 구호는 '국민이 이깁니다. 광주가 옳습니다'이다. 정치적으로 그 '옳음'에 보답하는 것이 그의 숙제다.
[광주=뉴스핌] 김준희 기자 = 이형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광주 북구을)이 지난 3일 뉴스핌과 만나 인터뷰 하고 있다. 2020.04.03 zunii@newspim.com |
다음은 이형석 광주 북구을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일문일답.
- 4년 전에는 광주에서 민주당이 완패했다.
▲ 4년 전 총선 때는 세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안철수 새정치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막연한 기대감이고, 또 하나는 국민의당 후보들과 당원들이 문재인 당시 대표에 대해 근거 없는 호남홀대론을 확산시킨 것이다. 이런 것들이 총선에 영향을 미치며 민주당에 대한 심판론을 만들어냈다.
또 민주당이 총선모드에 돌입하며 분위기 반전을 위해 데려온 분이 김종인 당시 비대위원장이다. 하필 전두환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출신이다. 수도권에서는 민주당이 우클릭하며 경제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하지만 광주전남에서 김종인은 완전히 악수였다. 막판에 자신을 비례 2번으로 셀프공천했고, 광주전남 몇 군데에는 이쪽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을 전략공천했다. 민주당 심판론이 확 일면서 어려운 선거가 됐다.
- 요즘 분위기는 어떻게 달라졌나.
▲ 국정농단 이후 대통령 선거가 7개월 앞당겨졌다. 대통령 선거 준비 과정에서 문재인 호남 홀대론에 대한 진실이 가려졌다. 특히 대선을 거치며 안철수 새정치의 본질이 드러나지 않으며 허구성이 알려졌다. 또 안철수 대표가 민주당에 있을 때 4·19정신, 5·18정신을 강령에서 빼려고 했다는 의견이 나오며 지역민들이 크게 배신감을 느꼈다. 표심은 문재인 후보에게 쏠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탄생하며 첫번째 국무총리로 당시 이낙연 전남지사를 임명했다. 또 장·차관과 청와대 인사들을 등용하는 것을 보며 과거 호남홀대론은 근거 없는 오해였다는 인식도 확산됐다. 결정적으로 37주년 5·18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이 완벽하게 5·18을 끌어안았다.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고 공약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5개구 시장과 20개 지역 구청장 선거 전체에서 승리했다. 민주당이 텃밭을 완전히 회복했고, 그 흐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20년 총선은 문 대통령 하반기 국정운영을 어떻게 뒷받침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2022년 다시 한 번 호남이 원하는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있는 정당이 어디냐는 묻고 있다. 4년 전 선거와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 유권자들에게 이형석만의 강점을 어필한다면.
▲ 저는 98년도에 정치를 시작했다. 광주은행 노조위원장을 하면서 들어왔다. 이후에 한 번도 좌고우면 한 적이 없다. 쭉 민주당과 함께 했다. 국민의당 바람이 불던 2016년에는 많은 지역 정치인들이 흔들렸다. 유력 인사 가운데 남은 이는 저밖에 없었다. 이개호·이용섭·박혜자 정도 남고 다들 국민의당으로 떠났다. 저는 계속 흔들리지 않고 민주당을 지켜왔고, 그 기억이 지역민들 민심에도 남았다.
2016년 총선에서 패한 직후엔 시당위원장에 도전했다. 당시 민주당 지지도는 6~7% 밖에 안 됐다. 흐트러진 민주당을 다시 추슬렀다. 우리당 원로들과 고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다시 함께 하자고 했다. 그 과정이 촛불혁명과 연계되며 2017년에 대통령 선거를 잘 치렀다. 시당위원장 시절에는 광주선대본을 꾸리며 이해찬·김부겸 의원에게도 같이 광주 공동선거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저를 버리더라도 중량감 있는 인사들로 선대위를 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호남이 문재인을 지키며 수도권까지 승리했다. 그 여파로 2018년 시도당위원장으로서 지방선거까지 완벽하게 치렀다. 이형석 정도면 우리 지역 대표정치인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 민주당 지도부로 활동하며 가장 보람 있던 일은 무엇인가.
▲ 최고위원으로서 광주전남의 여러 의견을 대변할 수 있었다. 노사상생일자리인 광주형 일자리를 출범시킨 것이 가장 의미 있었다. 또 AI(인공지능)집적단지를 광주에 유치했다.
- 광주 지역 숙원을 일부 이룬 셈인데 앞으로의 과제도 남았다.
▲ 광주는 3가지 축으로 발전해야 한다. AI와 글로벌모터스(자동차), 그리고 에너지다. 한국전력이 나주로 이전하며 광주전남에 핵심도시가 생겼다. 에너지산업을 얼만큼 육성해 나가느냐가 미래 성장 동력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한전공대를 설립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했고, 에너지 사업 육성 계기가 마련됐다. 새로운 르네상스를 여는 기틀과 근간은 마련됐다. 지난 2일 한국노총이 갑자기 (광주형일자리) 노사민정협의체에서 탈퇴한다고 해서 지지부진한 상황이지만 노동계를 설득해 다시 동력을 만들 것이다.
[광주=뉴스핌] 김준희 기자 = 이형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광주 북구을)이 지난 3일 뉴스핌과 만나 인터뷰 하고 있다. 2020.04.03 zunii@newspim.com |
- 5.18 40주년 특별위원장을 맡았다. 남은 한달여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 저는 80학번이다. 5·18 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었다. 5.18특별위원장 자리를 맡게 된 것은 숙명이다. 총선이 끝나면 조직도 꾸리고, 광주시와 5·18기념재단 관련 단체들과 협의해서 의미 있는 40주년을 맞이하려 한다. 우리는 보통 40세를 불혹의 나이라고 한다.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다. 하지만 5·18은 40주년이 됐음에도 최초발포명령자조차 밝히지 못했다. 암매장 실상과 헬기사격 실태, 계엄군의 성폭력 의혹 등 의구심만 켜켜이 쌓이고 있다. 늦게나마 진상규명위원회를 출범했는데 40주년에 걸맞게 활동을 제대로 해야 한다. 특히 진상규명이 제대로 안 되다보니 예전에 비해 5·18을 더 폄훼하고 날뛰는 것 같다. 정치권에서 더 심하다. 5·18 왜곡처벌법을 반드시 21대 국회에서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역사에 대해 폄훼할 수 없도록 왜곡 세력을 처단하는 근거법이 필요하다.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 것이다.
- 국회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무슨 일을 할 것인가.
▲ 5·18 관련 헌법전문을 개정해야 한다. 개헌이 필요하다. 20대 국회에서도 87년 체제 헌법을 수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일었다가 잠잠해졌다. 21대 국회가 출범하면 바로 개헌 논의를 해야 한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는 것을 포함해 헌법개정에 대한 요구를 하겠다. 대통령제와 관련해서도 지금의 5년 단임제보다는 4년 중임제 정·부통령제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문제에 대한 여론을 공유해 뜻을 같이 하는 의원들을 먼저 모으겠다.
-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정치에 입문한 계기는 노조위원장 때의 경험 때문이다. 당시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경제 여건이 가장 어려운 때였다. 당시 그것도 금융권 노조위원장을 지내며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노동법이 개악이 되며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라는 당시 노동계에 없던 용어가 만들어졌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이라는 개념도 그때 생겼다. IMF 이전에는 직원이냐 아니냐의 차이였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차이는 없었다. IMF 외환위기라는 경제 재난을 겪으며 노동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졌다. 정치적 이해관계 틀에서 형성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라는 영역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동계 비례로 광주 시의회에 들어갔다. 민주당의 기본 모토는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다. 지금도 강령에 들어 있다. 이들을 대변하는 그런 정치를 하고 싶어서 민주당에 입당했고, 지금 마음가짐도 그렇다.
-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2년 남았다.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 우선 코로나19 사태가 워낙 크다. 지금도 잘 하고 있지만 현명하게 국민 안전과 경제적 위기를 잘 극복해야 겠다. 이후 남은 과제는 문재인 대통령께서 역점을 뒀던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다. 이에 마침표를 찍는 역할이 있어야 한다.
또 잘 안 지켜지고 있는 공약이 연방제 수준의 분권이다. 지방분권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께서 정책적 배려를 크게 못 해주신 것 같다. 남은 2년 동안은 지방분권에 관심을 갖고, 공약하신 연방제 수준의 분권이 가능하게 만들어주시길 바란다.
먼저 재정분권이 필요하다. 중앙정부가 모든 예산을 틀어쥐고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추경만 해도 기재부의 반응을 봤지 않나. 국가부채를 생각하면 막 퍼주기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중앙이 예산을 쥐고 있어서 그 손을 펴게 만들어야만 한다. 필요할 때 주체적으로 쓸 수 있게끔 재정분권을 이뤄내야 한다. 또 공공기관 2차 이전 등을 통해 지방분권을 활성화해야 한다. 중앙의 권한을 전반적으로 지방에 이양해야 지방도 산다.
- 이형석에게 광주는 OO이다.
▲ 광주는 희망이다. 시대적 아픔도 많았고, 5·18도 겪었지만 광주 시민들의 선택을 보면 늘 광주가 희망이었다. 그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늘 옳은 방향이었다. 제 선거문구는 '국민이 이깁니다. 광주가 옳습니다'이다.
그리고 저는 대학과 직장, 지금 정치라는 영역에서도 광주와 함께하고 있다. 광주 시민들이 저를 선택하지 않아 두 번의 아픔을 겪었지만 나름대로의 선택이고 채찍질이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에 대한 두 번의 채찍이었다. 또 그만큼 민주당을 사랑했기에 광주 유권자들이 보냈던 매라고 본다.
[광주=뉴스핌] 김준희 기자 = 광주 북구 이형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후보 사무실 전경. 2020.04.03 zunii@newspim.com |
◇ 이형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약력
1961년 전남 순천 출생
1979년 순천고등학교 졸업
1987년 조선대학교 법학과 졸업
2006년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2007년 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관
2012년 광주광역시 경제부시장
2017년 문재인대통령후보 광주 상임선대위원장
2017년·18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現)
2020년 더불어민주당 5·18 40주년 특별위원장(現)
※ 뉴스핌은 4·15 총선을 앞두고 전국 각지에 출마한 후보자들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인터뷰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후보자 외에도 다른 정당 또는 무소속 후보의 인터뷰 일정이 잡히는대로 추가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문의 뉴스핌 총선특별취재팀(02-761-4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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