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고은 기자 = 최근 변동장 속에서 철저한 공부로 스마트해진 원유개미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투자설명서를 꼼꼼히 따져보고 근월물을 추종하는 KODEX WTI원유선물(H)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했는데, 유가가 급락했단 이유로 삼성자산운용이 돌연 근월물인 6월물 대신 6,7,8,9월물로 편입자산을 바꿨다는 것이다. 때문에 6월물의 급반등이 나타난 구간에서 제대로 된 수익을 거두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삼성자산운용 측은 6월물 가격이 장중 6달러까지 내려가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요구하는 증거금을 하회하면서 ETF가 제 기능을 상실할 수 있는 긴급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가치가 '제로'(0)로 떨어진 원유 [사진=로이터 뉴스핌] |
◆ "근월물 편입 ETF라서 선택했는데…"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ODEX WTI원유선물(H) ETF는 전거래일보다 11.33% 하락한 3680원에 장을 마쳤다. 이날 오후 5시 기준 뉴욕상업거래소에서 WTI유 선물은 전거래일보다 13% 하락한 배럴당 14.73달러에 거래중이다.
KODEX WTI원유선물(H) ETF는 지난 22일 하한가였던 3960원에서 23일 4130원, 24일 4150원으로 이틀간 4.8% 올랐다가 이날 다시 상승분을 모두 되돌리며 사상 최저가를 갱신했다. 한편 WTI선물은 22일 한국시간 오후 3시 30분 기준 10.9달러에서 23일 15.4달러, 24일 16.8달러로 이틀간 54% 급등했다가 이날 다시 15달러 수준으로 하락했다.
WTI 선물이 50% 가량 급등할 동안 KODEX WTI원유선물(H) ETF는 5% 오르는데 그치자 해당 ETF에 투자한 원유개미들의 원성이 커졌다. 원유개미들은 이 사태의 원인으로 삼성자산운용이 지난 23일 오전 7시 돌연 진행한 '롤오버'를 지적했다.
삼성자산운용은 지난 23일 80% 편입하던 6월물을 일부 매도하고 6월물 35%, 7월물 20%, 8월물 20%, 소량의 9월물 등으로 월물을 분산했다.
KODEX WTI원유선물(H) ETF를 매수한 대다수의 투자자들은 해당 ETF가 최근월물인 6월물을 추종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투자하고 있었는데, 아무런 사전 예고 없이 월물을 이연하는 롤오버를 추가로 진행하고 그에 따른 비용을 투자자에게 전가시켰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2월물을 편입한 TIGER 원유선물Enhanced(H) ETF의 경우 근월물인 6월물을 추종하는 KODEX WTI원유선물(H) ETF보다 시가총액이 3분의 1 정도로 작다. 다수의 원유개미들이 급변동하는 근월물의 가격을 추종하고자 KODEX WTI원유선물(H) ETF를 선택한 것이다.
지난 23일 개설된 'KODEX WTI 원유선물 집단대응 카페'는 나흘만에 회원수 6700명을 돌파했다. 투자자들은 사전 예고나 투자자 동의 없이 삼성자산운용이 돌연 편입월물을 바꿔 ETF가 유가 상승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손실을 입은데 대해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입장이다.
롤오버로 인한 손실은 근월물보다 원월물이 비싼 상황에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100달러로 6월물(20달러X5개)를 가지고 있을 때, 7월물이 25달러라면 25달러X4개를 매수하게 된다. 이때 7월물 가격이 40불까지 오르면 유가는 20달러에서 40달러로 100% 오르지만 내 ETF의 가격은 100달러에서 160달러로 60% 오른다.
만약 7월물 가격이 20불이 된다면 유가는 6월물이 20달러였으니 그대로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 ETF의 가치는 100달러에서 80달러로 20% 줄어들게 된다. 이같은 롤오버 비용은 롤오버를 진행한 순간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 유가의 등락에 따라 영향을 미친다.
◆ "월물 교체 당시, 장중 유가 증거금 하회해 긴급상황"
이에 삼성자산운용은 우선 지난주 KODEX WTI원유선물(H) ETF의 상승폭이 유가 상승폭보다 작았던 것은 하한가로 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난 22일 하한가였던 3960원이 유가 하락분을 다 반영하지 못한 가격이라는 것이다. 원유 선물 가격은 한국시간 3시 30분 기준 21일 21.19달러에서 22일 10.9달러로 약 49% 급락했는데,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ETF 가격은 하한가를 적용받아 30% 이상 하락하지 못한다.
삼성자산운용은 하한가 적용 없이 유가 하락분을 반영했더라면 KODEX WTI원유선물(H) ETF 가격이 2937원까지 내려갔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저점을 2937원으로 두면 지난 24일까지 약 41% 상승한 것으로 유가 상승분을 상당부분 추종한 것이 된다.
또한 6월물을 6,7,8,9월물로 분산해 ETF 가격이 극심하게 변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삼성자산운용에 따르면 6월물을 그대로 보유했을시 지난 24일 추정가치는 4308원으로, 실제 가격 4150원보다 주당 230원 높은 수준이다.
삼성자산운용은 또한 월물 분산을 진행했던 당시가 ETF가 제 기능을 잃어버릴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고 해명한다.
삼성자산운용 관계자는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요구하는 증거금이 배럴당 9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인데 당시 6월물 종가가 10달러 후반이었고 그날 새벽에는 6.5달러까지 내려갔다"면서 "장중이 아니라 종가로 잡혔으면 증거금보다 ETF 가치가 작아져 선물포지션을 축소해야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선물포지션을 축소하면 향후 유가가 올라도 제대로 유가 상승을 따라갈 수 없다"면서 "많은 투자자들이 유가가 0원이 돼야 ETF 상장폐지가 된다고 생각하시는데 배럴당 9달러 수준이면 비상조치를 해야하는 수준의 유가"라고 덧붙였다.
삼성자산운용은 아울러 매달 5번째 거래일부터 9번째 거래일인 정기 롤오버 기간이 오면 현재 편입한 6,7,8,9월물 중 6월물만을 롤오버하고 7,8,9월물을 편입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향후 다시 근월물을 편입하는 구조로 되돌아갈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방침을 정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goe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