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영기 기자 = 뉴욕의 이삿짐 센터 '로드웨이무빙'의 로스 사피르 사장은 "떠날 여유가 되고 또 떠나고 싶은 사람들은 전염병의 진원지인 뉴욕을 떠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이삿짐 보관 사업도 번창해, 11만 평방피트나 되는 창고에 여유가 별로 없다고 한다.
코로나19(COVID-19) 충격이 가장 심한 미국의 뉴욕에는 벌써 주민 탈출에 가속도가 붙는 기미가 감지되고 있다. 고급 거주시설이 더 이상 팔리지 않는 반면 이삿짐 센터는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9.11사태 이후 줄어드는 인구를 뉴욕시는 엄청난 노력으로 다시 늘렸지만, 최근 전염병 확산 사태로 인해 뉴욕 탈출이 다시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는 산업구조 변화와 기술 발달로 더 이상 '뉴요커'란 이름표가 필요없어진 데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붐비고 오래된 뉴욕이 위험할 수 있다는 인식이 높아진 탓으로 풀이된다.
◆ 부동산중개·이삿짐센터 "뉴요커가 줄어들고 있어요"
[뉴욕 로이터=뉴스핌] 이영기 기자 =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은 아직 도로가 텅 비어있고 비둘기가 자동차 대신 도로위에 있다. 2020.04.28 007@newspim.com |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지는 최근 기사에서 뉴욕 고급주거지 중개인의 고충을 소개하면서, 코로나19사태로 그간 고급주거지를 찾던 고객이 뚝 끊어졌고 이미 체결한 계약도 해지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주에 거의 1억달러의 매매를 중개하던 더글라스엘리만 부동산의 캐첸 중개인은 최근 20만달러짜리 펜트하우스 거래를 중단했다. 중국인과 러시아인들이 더 이상 찾지 않는 데다가 코로나19쇼크가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다.
부동산 개발업자 캐빈 멀로니는 "1980년후반의 대부금융 사태, 9.11테러 사태, 2008년 금융위기 등도 오랜 기간을 통해 겨우 이겨냈지만 이번에는 더 심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런 조짐을 뉴욕의 이삿짐 센터 로드웨이무빙 상황에서 찾았다. 이삿짐 센터의 사장 로스 사피르 씨는 고객이 전화하면 바로 알아차린다. 이것이 코로나19(COVID-19)로 뉴욕에서 떠나려고 이사 차량을 예약하기 위한 전화라는 것을. 그들은 언제돌아올까?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사피르 씨는 "우리야 좋습니다만 뉴욕이 어떤식으로 영향을 받을지는 잘 모르겠네요"라고 애둘러 말했다. 좁은 주거지에 살면서 북적대는 골목, 발디딜틈 없는 지하철을 마다하지 않는 뉴요커가 얼마나 되느냐에 뉴욕 경제가 결정된다.
줄곧 증가하던 뉴욕 인구는 최근 3년간 줄어들고 있다. 이번 코로나19사태가 가속페달이 됐다. 인구가 줄면 도시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뉴욕시 인구는 지난 1970년과 1980년대에도 줄어 든 적이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선임연구위원 윌리엄 프레이는 "탈산업화로 도심에 있던 제조업이 쇠퇴할 시기였고 당시 뉴욕 인구가 10%나 줄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뉴욕시 재정은 파산 지경에 몰렸다가 회복하는 데 수년이 소요됐다.
이후 1980년대 700만여 명에서 2016에는 거의 840만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이제는 늘어난 인구가 오히려 짐이되는 형국이다.
[뉴욕 로이터=뉴스핌] 황숙혜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에 감염돼 생명을 잃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2020. 04. 21. |
미래도시센터의 조너선 보월러스 이사는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다"며 "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사람들이 떠나면 시 재정이 힘들어지고 그러면 지하철, 공원, 학교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뉴욕시가 망할 것이라는 예단은 여러번 있었고 그 대표적 예가 9.11이었다고 보월러스는 분석한다. 9.11 당시에 사람들은 테러가 또 올 것을 우려하면서 도시를 떠났지만, 이후 다시 사람들이 찾아들었고 특히 2001년부터는 관광산업은 번성했다는 것. 이는 뉴욕시가 뉴욕은 여전히 안전하고 여전히 살만한 곳으로 명성이 남아있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데 성공한 결과다.
도시개발전문가 세드 핀스키는 "뉴욕은 정말 살기가 쉽지 않은 곳"이라면서 "서럽고 붐비고 비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핀스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용보다는 편익이 더 크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욕시 주민들은 이번 코로나19로 초래된 비용이 약97억달러(약 12조원)로 이로 인해 뉴요커의 자부심인 박물관, 갤러리, 극장, 공연장 등 문화예술에 대한 지출이 축소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빌 드블라지오 뉴욕 시장 측은 코로나19 이전보다도 더 강한 뉴욕을 만들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 코로나19 계기로 원격지-재택근무 활성화
하지만 저간의 사정은 이런 기대와는 약간 다르다. 기업 입지 선정 전문 컨설팅회사 보이드컴퍼니의 대표 존 보이드 주니어 씨는 많은 기업이 뉴욕으로 이전하려는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쇼핑몰이나 영화극장 같은 전통적인 부문은 이미 수지타산이 간당간당했기 때문에 코로나19 이후에도 다시 영업하기가 쉽지 않고, 따라서 뉴욕시에서는 기업에 대한 세금을 높일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코로나19를 계기로 재택근무나 격지근무도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돼 꼭 뉴욕으로 들어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노동시장도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변해버렸다. 사람들이 뉴욕을 탈출하기 시작하면서 필요한 노동력도 뉴욕시 밖에서 구하기 더 쉽고 해서 심지어 뉴욕시에 거주하는 노동력도 시외 근무 조건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뉴욕에서 인력파견 사업을 하는 제이미 호크하우저 씨는 뉴욕을 떠날 예정이다. 남편과 아이들은 지금의 퀸스 지역의 숲이 울창한 곳에서 살고 있는데, 햄프턴에 있는 친정집 부근으로 이사를 간다. 반대하는 식구가 없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 키우기에도 좋은 환경이 아니다"며 "꽉찬 지하철을 다시 타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과거에 뉴요커라는 자부심 높은 사람에게는 뉴욕 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금융, 미디어, 광고, 패션 등 거의 전분야에서 최고만이 모여드는 곳이고, 따라서 뉴요커는 나름 자기분야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졌다.
포브스(Forbes) 지는 "자기 분야에서 큰 손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기업은 물론이고 개인들도 뉴욕으로 진출해서 뉴요커가 되어야만 했다"고 과거 트렌드를 압축했다.
잡지는 그렇지만 기술발달로 원격지 근무가 가능하고 이제는 뉴욕에 집결할 필요가 거의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뉴욕을 탈출하고 월가의 대형은행과 금융기관도 이미 플로리나나 노스캐롤라이나, 텍사스 등에서 둥지를 틀고 있는 추세라는 것.
주거비, 교통비 등 생활비가 적게 들고 더욱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으며 또 일자리도 더 많은데 뉴욕에 살 필요가 있는가라는 반문이 나온다. 포브스 지는 "더 이상 뉴요커가 되기 위해 크나큰 희생 또는 비용을 치룰 필요가 없어졌다"고 뉴욕 탈출을 당연한 것으로 평가했다.
[뉴욕 로이터=뉴스핌] 이영기 기자=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코로나19로 운행하지 않는 버스들이 빌딩숲을 배경으로 가지런하게 서있다. 2020.04.29 007@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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