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영태 기자 =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이 한국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에 사과한 데 대해 남북관계를 추가로 악화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분석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도 남북연락사무소의 필요성에 공감했을 것이라면서도, 한반도 문제에 중대한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는 회의적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26일 보도했다.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 국제관계국장은 25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우호적 관계를 고려해 남북관계를 현 상태에서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진단했다.
◆ 고스 국장 "한국 공무원 사살은 중앙정부 아닌 지역부대 차원 결정"
북에서 피살된 공무원 A씨의 시신 등을 찾기 위한 군경의 수색이 이뤄지고 있는 서해 북단 연평도 인근 해상 [사진=인천 옹진군] 2020.09.27 hjk01@newspim.com |
고스 국장은 "이번 한국 공무원 사살이 중앙정부 차원이 아닌 지역 부대 차원에서 내려진 결정으로 보인다"며 "모호한 행동수칙에 대한 해석 문제가 주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번 사건으로 자신이 선호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내적으로 많은 압박을 받는다는 점을 알게 됐고, 이 때문에 그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인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북한은 이번 사건이 더욱 확대되지 않게 하기 위해 다소 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관점에서 김 위원장의 사과가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리 카지아니스 미국 국익연구소 한국담당국장은 이번 사과가 나온 배경에 주목했다.
카지아니스 국장은 "북한은 태풍 피해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주민들의 굶주림 등 내부적으로 대형 악재에 직면한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남북관계의 위기라는 또 하나의 문제를 추가하길 원치 않았고, 이에 따라 사과가 나온 것"이라고 봤다.
그는 따라서 이번 북한의 사과는 '전략'과 '계산적'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피력했다.
◆ "북한 사과 배경은 국제사회 비난 우려한 상황적 조치"
서해 북단 소연평도 인근 해상서 수색작업을 하고 있는 해경 [사진=인천해양경찰서] 2020.09.26 hjk01@newspim.com |
전직 미 당국자들은 북한이 사과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적' 측면을 강조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북한이 전 세계적 비난을 피하려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이번 사건으로 인한 자신들에 대한 일종의 세계적 역풍을 원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한국인을 사살한 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추가 조치를 취한 데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우려했고, 이것이 사과의 근원이 됐다"고 언급했다.
조셉 디트라니 전 북핵 6자회담 차석대표는 과거 북한이 한국 정부에 사과나 유감 표명을 했던 사례를 언급하면서, 북한의 이번 사과는 옳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왜 지금이냐는 질문을 해 볼 수 있지만 한국인이 사살됐고, 이것이 언론에 보도됐으며, 또 시신을 처리하는 방식이 매우 잔인한 점이 분명한 만큼 북한은 해야 할 사과를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과거 유감 표명을 하면서도 여전히 한국을 비난하는 행태를 보였다며, 그런 관점에서 이번 사과는 이례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이번 사건의 경우 명백히 공개적으로 드러났고, 그런 점에서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감추는 건 북한 입장에서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 "남북·북미대화 재개 계기" vs "남북대화 재개 의지 없어"
이번 북한의 사과가 한반도 상황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디트라니 전 차석대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이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인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북한이 개성연락사무소를 폭파했지만, 이번 사건은 연락망이 계속 가동돼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디트라니 전 차석대사는 이번 비극적 사건이 앞으로 몇 달 안에 남과 북, 그리고 미국과 북한이 대화를 재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고스 국장은 이번 김 위원장의 사과가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해석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관측했다. 미국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북한은 한국과의 관여를 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고스 국장은 "북한은 한국이 미국과 자신들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한국과 대화를 하려 할 이유가 없다"고 예상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남북한 정상이 최근 친서를 교환하는 등 북한이 대화 재개의 의지를 일부 보인 건 사실이지만, 올해 북한이 여러 차례 엇갈린 신호를 보내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북한 내 다른 기관과 인물 등이 한국의 대화 제안을 거절해 왔고, 심지어 강경한 것은 물론 문 대통령을 모욕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최근 남북 정상의 친서 교환이 긍정적인 신호일 수 있지만 과도하게 해석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카지아니스 국장은 다음달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식과 11월 3일 미국 대선까진 모든 게 멈춘 상태라며, 이 모든 게 지나가야 한반도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북한 사과가 북미대화 재개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
전문가들은 또 북한의 사과나 남북한 정상의 친서 교환 등이 북미대화 재개에 별다른 돌파구를 만들 것으로는 보지 않았다.
고스 국장은 북미 간 대화 재개는 미국이 얼마나 유연성을 보이는지에 달린 문제라며, 대선을 약 40일 앞둔 상황에서 미국이 대북 제재 완화를 의제로 제시하거나, 북한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 식의 입장 변화를 보일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힐 전 차관보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북한은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진전을 이뤘다고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서방세계가 자신들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때까지 시간이 흐르길 바라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힐 전 차관보는 "북한이 미국과 대화 재개 의지를 보인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며 "문제는 현 시점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의지가 없다는 점"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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