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미리 기자 = "앞으로 한 달 내 코스피가 6.8% 이상 하락할 확률이 96%라고 뜨네요. 어제는 보이지 않던 메시지인데…."
지난 9일 배진수 신한AI 대표는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다 이같이 말했다. 신한AI의 마켓워닝 시스템(Market Warning System)이 띄운 메시지다. 마켓워닝 시스템은 신한AI가 지난 20년간 금융데이터를 분석해 과거 시장의 하락국면 중 상위 5%에 해당하는 시장 급락구간을 파악하고, 이와 동일한 흐름이 포착되면 알람을 주는 시스템이다. '앞으로 한 달 안에 폭락할 시장을 예측해 대응하자'가 기본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2주가 지난 후 결과는? 마켓워닝 시스템의 예측이 정확히 맞았다. 당시는 코스피가 오름세를 보이던 시기로, 하락 알람은 예상 밖이었던 게 사실이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배진수 신한AI 대표. 2020.09.09 yooksa@newspim.com |
마켓워닝 시스템은 전세계 10개의 시장 변수와 비정형 데이터 341개를 조합해 도출한 655만여개 시나리오를 매일 모니터링해 리스크가 가장 큰 시나리오 3가지를 알려주는 방식으로 서비스가 제공된다.
28일 새롭게 뜬 3가지 알람 중 하나인 독일 DAX를 예로 들면 이렇다. 미국 ISM 제조업지수 2개월 상승, 인도네이사 IDX 2개월 하락, 뉴질랜드 10년 국채 금리 2개월 상승이 겹쳐져 독일 DAX가 한 달 내 7.25% 하락할 확률이 74.1%(과거 116번 해당 시나리오 탐지)에 달한다는 내용이다.
"리스크 관리가 다소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인공지능으로 이를 구현할 수 있습니까." 마켓워닝 시스템은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의 특명으로 만들어졌다. 6개월간 개발해 5월 시범 운영한 후 이달부터 은행, 금융투자 등 신한금융 6개 그룹사에서 쓰기 시작했다.
배 대표는 "사람은 '동남아 시장이 나빠졌네, 우리도 악화되겠군' 정도의 연관을 할 수 있고, 마켓워닝 시스템처럼 3가지 요인을 연계해 파악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마켓워닝 시스템을 활용하면 과거에 시장이 어떻게 바꼈는지 다 알 수 있다. 리스크 관리에 활용하면 편리하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그룹 내에서만 쓰지만, 시간이 지나면 외부에도 제공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나갈 방침이다.
◆ 금융권 최초 AI 전문회사 '설립 1주년'
신한AI는 지난해 9월 금융권 최초 AI 전문회사로 출범했다. AI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가동한 '보물섬 프로젝트'에서 87% 예측률이란 성과에 자신감을 얻은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독립법인 출범에 힘을 실으면서다. 코로나19로 전 업권에서 디지털 역량 강화를 외치는 현재를 감안하면, 시의적절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신한AI 첫 수장으로 낙점된 이가 배 대표다. 1989년 신한은행에 입행한 그는 국제부 외환딜러, 자금시장부 팀장, 금융공학센터장, 뉴욕지점장, IPS(투자상품서비스) 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은행원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외환시장, 주식시장, 파생시장을 모두 경험한 시장 전문가다. 글로벌 경험을 갖추고 시장 이해도가 높은 그가 금융시장 분석에 주력하는 신한AI 조기 안착을 이끌 적임자라 판단됐다.
이후 조 회장은 배 대표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기술력을 키우는데 집중하라"고 거듭 당부했다. 올 여름 배 대표가 여름 휴가 차 사무실을 비웠을 때에도 신한AI 사무실을 찾아 직원들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며 부담을 덜어줬을 정도다. 배 대표는 "AI 모델은 수많은 실패 속에서 하나가 나온다"며 "실수하면 안 되는 금융 문화 속에서는 AI 사업을 할 수가 없으니 이처럼 말씀을 주시는 것 같다"고 했다.
배 대표도 신한AI 합류 후 빠른 적응을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시장 전문가이긴 했지만 디지털 세상은 그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저도 문과생이거든요(웃음) 기본 개념은 익혀야 개발자들하고 얘기를 나눌 수 있잖아요. 박사들하고 계속 논의하고, 해외 출장에서도 시차 때문에 잠이 안오면 논문을 계속 읽고…. 공부 진짜 많이 했어요."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배진수 신한AI 대표. 2020.09.09 yooksa@newspim.com |
여러 동력이 더해져 신한AI는 지난 1년간 크고 작은 성과를 냈다. 마켓워닝 시스템 외에도 보물섬 프로젝트 실절부터 구축해온 AI 기반 투자자문 플랫폼 '네오 시스템'을 활용해 올 1월 출시된 상품 2개의 누적 수익률이 11~12%(최근 6개월은 30%)를 기록한 게 대표적이다. 또 신한AI는 연말까지 네오를 한 단계 고도화하기 위해 글로벌 AI회사인 엘리먼트와 손잡고 현재 새로운 알고리즘도 구축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자산관리 대중화를 위한 로보어드바이저 사업을 코스콤에 신청하기도 했다. 예상하는 서비스 시점은 내년 하반기다. 배 대표는 "간단할 걸 하면서 AI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라고 표방하는 곳이 많은데, 진짜 AI 회사의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는 신한AI가 처음일 것"이라며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초개인화 모델을 구현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배 대표는 신한AI를 글로벌 금융 분야의 최고 AI 회사로 만드는 게 목표다. "인간의 신경망과 같은 AI로 시장을 분석할 수 있다니, 시장 전문가로서 화룡점정을 찍는 기분이 들어요. 제가 가진 모든 시장 지식을 쏟아부어서 제대로 된 것을(AI 금융 서비스)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신한AI는 역량 강화에 힘쓰고 있다. 카이스트 등 대학교와 협력을 강화하고, 매년 10억원 이상을 데이터 구입에 투입하는 등 고급 인력들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또 향후 인수합병(M&A)도 추진해 AI 역량을 강화할 계획도 세워뒀다. 현재 미국, 캐나다, 영국 등 지역 AI 회사들을 대상으로 조건이 맞는 업체를 지속적으로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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