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2020년 국내 산업계는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위기와 기회가 공존했습니다. 항공, 자동차, 철강 등 전통의 뿌리 업종들은 코로나19 직격탄에 유례없는 어려움을 겪었고 반도체, 가전 등 비대면 업종은 호황기를 누렸습니다. 그렇다면 2021년은 어떨까요. 전대미문의 불확실성 속에서 새 해를 맞는 주요 그룹의 사령관 면면을 통해 업종 간 사업의 향방을 가늠해 봅니다.
[서울=뉴스핌] 나은경 기자 =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3사가 새해를 앞두고 '탈통신', '신사업'을 공통 키워드로 하는 조직개편과 인재배치를 완료했다. 조직개편의 강도는 높았고 인사의 폭은 중폭 이상이다.
각 사는 가입자당평균매출액(ARPU·Average Revenue Per Unit)을 기반으로 영업이익이 가장 높을 2~3년 안에 신사업을 발굴하고 정체된 통신시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지를 이번 조치에 담았다.
새로운 도전 앞에 선 통신3사. 회사를 가장 잘 아는 수장들은 안정 속 변화를 꾀한다는 구상이다.
올 초 구현모 사장을 대표이사(CEO)로 선임한 KT는 11년만에 첫 내부 출신 인사가 수장이 됐고, 지난달 하현회 부회장을 이어 CEO를 맡게 된 황현식 사장은 LG유플러스 역사상 첫 내부 출신 CEO다. 구조조정과 신사업 발굴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박정호 SK텔레콤 사장도 이번 인사에서 유임되면서 내년에는 임기 5년차에 접어들게 된다.
◆부회장 된 SKT 박정호, 중간지주사 전환까지 노린다…"탄탄한 비통신 더 탄탄하게"
[서울=뉴스핌] 나은경 기자 =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사진=SKT] 2020.09.25 nanana@newspim.com |
SK텔레콤은 인수합병(M&A) 전문가로 평가받는 박정호 사장의 지휘 아래 통신3사 중 미디어, 보안, 커머스 등 비통신 사업부문을 가장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회사다. 성장성이 보이는 비통신 부문은 일찌감치 분사시켰고 지금은 분사된 계열사들이 차례로 기업공개(IPO)를 기다리고 있다.
1989년 선경(현 SK네트웍스)에 입사해 1995년 SK텔레콤에서 뉴욕사무소 지사장을 맡으며 SK텔레콤과 인연을 맺은 박 사장은 이후 SK그룹, SK커뮤니케이션즈, SK C&C를 거쳐 지난 2017년 대표이사로 선임되며 SK텔레콤으로 돌아왔다. 그룹 주요 계열사의 주요 직위를 맡아오면서 박 사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신임을 받고 있다.
과거 SK C&C애서 인공지능(AI)과 스마트물류 등 신사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성과를 낸 만큼 '빅테크' 기업으로의 탈바꿈을 꿈꾸는 SK텔레콤 역시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박 사장은 IPO를 앞둔 비통신 계열사에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전략을 택했다. ▲최진환 SK브로드밴드 대표 겸 SK텔레콤 미디어사업부문장 ▲박진효 ADT캡스 대표 겸 SK텔레콤 보안사업부장 ▲이상호 11번가 대표 겸 SK컴즈 대표 겸 SK텔레콤 커머스사업부장 등 SK텔레콤의 비통신 3대 축의 수장이 모두 유임된 것.
모빌리티 사업부도 눈에 띄는 성장세에 힘입어 선례를 따라 분사에 나섰다. 최근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모빌리티 사업부 분할 계획이 승인되면서, 오는 29일 신설법인 '티맵모빌리티'가 출범할 예정이다.
대신 본업인 통신사업(MNO)은 9개 마케팅 컴퍼니로 쪼개는 대수술을 감행했다. 업계에서는 정체된 무선사업을 분야별로 쪼개 좀 더 집중적으로 관리하려는 박 사장의 의지가 담겼다고 해석한다.
비통신 자회사들의 원활한 기업공개(IPO)를 위해 코퍼레이트 센터 산하에는 기업공개(IPO) 추진담당을 신설했다. 여기에 SK텔레콤의 수장인 박 사장이 이번 SK그룹인사에서 SK하이닉스의 부회장 자리를 겸임하게 되면서 SK텔레콤의 장기목표라고 할 수 있는 중간지주사 전환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구현모號 KT, 'KT엔터프라이즈' 필두로 B2B 강화 본 궤도
KT 구현모 대표 [사진=KT] 2020.07.02 abc123@newspim.com |
구현모 사장은 11년 만에 나온 KT 내부출신 최고경영자(CEO)다. 전략과 기획, 자회사 관리 등을 주로 담당하면서 KT의 대표적 전략가로 꼽히기도 한다.
그런 구 사장이 2021년도 조직개편을 통해 본격적으로 제 색깔을 드러냈다. 지난 1월 진행된 2020년도 조직개편은 구 사장이 대표이사 내정자 신분으로 진행한 것이어서 전임 CEO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완전한 제 조직을 구축한 구 사장의 이번 조직개편은 전략가로서의 면모를 확연히 엿볼 수 있다.
이번 조직개편에서 KT는 기업간거래(B2B), 인공지능(AI)·디지털전환(DX)을 핵심으로 주요 인력을 배치하고 관련 조직을 강화했다.
특히 통신사에서 이제까지 잘 부각되지 않았던 B2B 사업을 강화한 부분이 눈에 띈다. B2B 사업의 경우 주요 고객사와 거래를 하게 되더라도 고객사와의 관계 탓에 이를 외부에 홍보하는 것이 어려워 성과에 비해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밖에 널리 알려진다는 것이 꼭 실제 사업수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홍보에서는 한계로 작용한다.
KT의 B2B 사업부문도 이 때문에 그간 좋은 성적표를 기록하면서도 통신사업에 비해 일반 대중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달부터는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B2B 브랜드 'KT엔터프라이즈'를 선보이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코로나19로 통신부문 매출이 정체돼 B2B 사업을 대표하는 AI/DX융합사업부문의 성장세를 더 이상 외면하기 여려워진 것도 이유가 됐다.
KT는 B2B 사업을 맡고 있는 '기업부문'을 '엔터프라이즈부문'으로 재편하고 수장에 IT전문가 신수정 부사장을 앉혔다. KT 관계자는 "IT부문장 및 KT그룹 최고정보책임자(CIO)를 역임한 신수정 부사장이 B2B 고객에게 창의적인 디지털 혁신 방안을 제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이 같은 기대에 부응한 것일까. 신 부사장 역시 취임 직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KT에 기업의 통신영역과 디지털 전환(DT)을 같이 맡겨달라"며 장문의 글을 남길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취임 직후 '신사업'부터 챙긴 유무선 통신전문가 황현식 LGU+ 사장
[서울=뉴스핌] 나은경 기자 = 황현식 LGU+ 대표이사(사장) [사진=LGU+] 2020.11.27 nanana@newspim.com |
36년간 LG그룹에 몸 담은 하현회 전 LG유플러스 부회장이 물러나자 공석이 된 LG유플러스의 수장 자리는 내부를 가장 잘 아는 황현식 사장이 올랐다. LG유플러스 내부 출신이 CEO까지 맡게 된 첫 사례기도 하다.
강남사업부장, 영업전략담당 등 유·무선 사업을 두루 거친 황 신임 사장은 사내에서 대표적인 '영업통'으로 꼽힌다. 올해까지만해도 통신과 미디어사업을 총괄하는 컨슈머사업총괄로서 사내 살림을 도맡았다.
하지만 이처럼 통신사업을 안팎으로 꿰뚫고 있을 황 사장은 취임 직후 신규사업 영역에서 성장동력을 발굴할 '신규사업추진부문'부터 만들었다. 신규 조직에는 스마트 헬스, 보안, 교육, 광고, 콘텐츠, 데이터 사업 등 LG유플러스의 비통신사업 중 두각을 드러내는 곳이 모두 포함됐다.
LG유플러스 관계자도 "이번 조직개편은 최우선 과제로 신사업 영역에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겠다는 신임 CEO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말 조직개편 뒤 한달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신규사업추진부문을 맡을 리더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회사의 성장동력을 짊어질 리더 자리를 놓고 황 사장의 고심이 깊어보인다.
◆'신사업 발굴' 과제 안은 3사 CEO…"2~3년 내 승부 봐야"
통신3사가 이렇게 신사업 발굴에 사활을 건 이유는 "영업이익이 가장 높을 때 '통신사'의 한계를 넘어 신사업에서 확실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증권업계에선 이르면 내년, 늦으면 2022년께가 이통3사의 영업이익이 고점을 찍는 시기일 것으로 본다. 현재 1000만을 조금 넘은 수준인 5G 가입자 수가 늘어 5G가 보편화되면서 이 시기 ARPU가 급등할 것으로 예상해서다. 인구가 크게 늘지 않아 통신서비스 가입자 증가에도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새 통신기술 상용화 후 대개 5년이 지나면 오히려 중저가 요금제 가입자가 늘어나 질적 성장이 어려워진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통신사업은 정부가 빌려준 주파수를 활용해 안정적으로 사업하는 모델로 각광받았지만 최근에는 요금인하를 비롯한 각종 규제로 통신사업만으로는 돈을 벌기 힘들어졌다"며 "5G 상용화 후 5년이 지나 성숙기에 다다르면 통신사업만으로 지금 수준의 영업이익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영업이익이 정점을 찍을 2~3년 안에 신사업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통신사의 보수적인 문화가 신사업 발굴에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사가 워낙 이제까지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사업모델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신사업 추진에 있어서 다른 IT회사 및 콘텐츠 회사보다 확실히 보수적인 측면이 있다"며 "비통신 신사업 육성이 '반짝' 트렌드에 그치지 않고 신사업 조직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으려면 CEO들의 과감한 결단과 새 조직에 대한 꾸준한 신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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