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하수영 송기욱 기자 = 인도태평양 지역의 대 중국 안보협의체인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가입)' 합류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더 거세졌다.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2+2 회의) 참석 차 방한한 미국 국무‧국무장관의 입에서 '중국의 위협 대응', '인도태평양 안보를 위한 한국의 역할', '한미일 협력' 등의 말이 언급된 것이다.
'쿼드', '중국'이란 말을 입에 담지 않았을 뿐, 사실상 '한국이 쿼드 혹은 쿼드의 확장판인 쿼드 플러스에 합류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읽힌다.
그러나 한국은 이전과 같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신 남방정책이 다르지 않다'고 하면서다. 심지어 '개방적이고 투명한 협의체라면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하면서 우회적으로 거부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2+2 회의로 인해 쿼드를 둘러싼 한미 간 온도차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국이 굉장히 어려운 입장에 놓였다"며 "결국 쿼드에 안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로버트 랩슨 주한 미국대사 대리(왼쪽)와 정은보 외교부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대사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진행된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가서명식에서 사인 후 합의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 정의용 외교부 장관, 서욱 국방부 장관이 박수를 치고 있다. 2021.03.18 yooksa@newspim.com |
◆ 美 "중국의 전례 없는 위협, 한미동맹 중요해져"‧"한미일 협력으로 위협 대응"
미국은 시작부터 쿼드 압박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17일 오후 한국에 도착한 뒤 바로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온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한미 국방장관회담 모두발언에서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안보와 안정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 곳"이라고 한 것이다.
이어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안정, 번영을 보장하는 우리 임무의 견인으로 우리는 매번 도전적인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러하다", "중국과 북한의 전례 없는 위협으로 한미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고도 했다.
같은 날 국방부가 발표한 '한미 국방장관회담 결과' 자료에 따르면 오스틴 장관은 회담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다음 날인 18일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 종료 직후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한미동맹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 안보, 번영의 핵심축"이라는 표현이 포함됐다.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이라는 표현도 재차 언급됐다.
또 "한미는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합법적 교역을 방해받지 않으며, 국제법을 존중한다는 양국 공동의 의지를 강조했다"는 표현도 있었다. 이는 남중국해 등에서 중국에 맞서 항행의 자유 보장을 외치고 있는 쿼드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서울=뉴스핌] 사진공동취재단 =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서욱 국방부 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에 앞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1.03.18 photo@newspim.com |
회의 직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는 발언의 수위가 더 세졌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모두발언에서 "중국의 공격적이고 권위적인 행동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어떤 행위를 낳고 있는지 논의했다"고 하면서 중국을 직접적으로 저격하는 한편, "이에 대한 동맹의 공통된 접근이 중요해졌다", "한미일 협력을 통해 이 위협을 다뤄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스틴 장관도 "중국은 미국 국방부 관점에서 장차 추적하는 도전 과제로서, 이에 대한 한미일 안보 협력의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블링컨 장관은 '쿼드와 관련해 한국이 기여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한국과도 긴밀히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며 "이런 모임은 한미일 3자 협력과 일맥상통하며, 굉장히 큰 혜택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사진공동취재단 = 1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서욱 국방부 장관이 한·미 외교·국방 장관 회의(2+2회의) 후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21.03.18 photo@newspim.com |
◆ 한국 "쿼드, 논의도 안 했다"‧"개방성 원칙 부합하는 협의체라면 협력 가능"
반면 한국은 일관되게 차분한 기조를 이어가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쿼드에 참여한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참여를 안 한다고 하는 것도 아닌 '전략적 모호성' 기조를 이어가려는 모습이었다.
두 미국 장관의 방한 하루 전인 지난 16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서욱 국방부 장관은 쿼드 관련 질문에 "이번 회의 공식 의제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17일 발표된 한미 국방장관회담 결과 자료와 18일 발표된 한미 2+2회의 공동성명에서도 "한미는 한국의 신 남방정책과의 연계 협력을 통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들기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2+2회의 직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서 장관은 '쿼드나 한미일 군사협력 관련 논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런 논의는 없었다"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평화와 안전 유지 상황 관련 논의는 있었지만, 그런 구체적인 건 없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심지어 우회적으로 쿼드 가입을 거부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도 나왔다.
문홍식 국방부 부대변인은 이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쿼드 관련 질문에 대해 "우리 정부는 역내 지역협력과 관련, 포용성, 개방성, 투명성이라는 원칙에 부합한다면 어떤 협의체라도 협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쿼드는 기본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배타적 성격의 협의체다.
[서울=뉴스핌] 사진공동취재단 = 1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한·미 외교·국방 장관 회의(2+2회의) 후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21.03.18 photo@newspim.com |
◆ 박원곤 "美, 한국의 쿼드 합류 준비중일 듯"‧신범철 "한국, 쿼드 가입 전향적으로 검토해야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한국이 쿼드 관련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결국 쿼드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외교적인 수사로 피해가긴 했지만, 사실상 쿼드 논의를 했다고 보는 게 맞다"며 "공동발표문을 보면 사실상 쿼드의 방향성, 목적, 앞으로 할 것에 대한 내용들은 다 들어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바이든 행정부의 쿼드 확장 의지는 분명하다. 미국도 (한국의 합류를)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은 당연히 동참하기를 공식적으로 요구해올 수 있으며, 그러면 한국 입장에서는 안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도 "공동성명에 중국에 대한 언급이 빠졌는데, 하지만 미국은 넣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한국이 중국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을 회피하니 그 부분을 미국이 수용한 것인데, 대신 기자회견에선 불만을 표출하기라도 하듯이 중국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분명한 시각차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중국 문제를 둘러싼 한미 간 이견이 있음이 확인됐다"고 총평했다. 다만 신 센터장은 향후 한국의 쿼드 가입 가능성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해야겠지만, 현 정부에서는 안 할 것 같다"며 "다음 정부에서 검토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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