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 정부가 항공기 부품 관세 면제 방안으로 거론되는 세계무역기구(WTO) 민간항공기협정(TCA) 가입을 검토하기로 했다. 앞서 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해 가입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대한항공을 비롯한 항공업계의 지속적인 요구를 반영해 TCA 가입시 영향 등에 대한 연구용역을 고려한다는 방침이다.
항공업계는 내년부터 시작되는 항공기 부품 관세 면제 일몰을 앞두고 우려를 키우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업계 전체가 위기인 상황에서 일몰 유예와 함께 장기적으로 TCA에 가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TCA에 가입할 경우 영세한 국내 항공기 제조 생태계를 키우는 데 제약이 생긴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아 용역에 관심이 쏠린다.
◆ 업계 "항공기 부품 원산지 증명 어려워, FTA 활용 불가"…기조실에 요청한 용역 수용 가닥
26일 정부 관계자는 "TCA에 가입할 경우 그에 따른 효과와 피해 등이 어느정도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관계부처 합동으로 연구용역을 진행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기 제조업계를 관할하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운항업계를 담당하는 국토교통부 등이 용역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르면 다음주 회의를 통해 용역 진행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정부가 TCA 가입을 고려하는 이유는 항공업계에서 꾸준히 요구해온 사안이기 때문이다. TCA는 WTO 부속협정으로 글로벌 민간 항공기 업계 내에서 자유무역을 강화하기 위해 부품 등에 대한 관세를 전면 철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항공업계는 항공기 부품 관세를 영구적으로 면제하는 방안으로 TCA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TCA 가입국은 해당 협정을 통해 부품 관세를 면제받고 있다. TCA에 가입돼 있지 않은 대부분의 국가는 자국법을 통해 부품 관세를 면제한다.
한국 역시 관세법 89조를 통해 항공기 부품 관세를 면제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EU FTA 체결 이후 FTA를 통해 관세를 면제받으라며 관세법 특례를 없애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19년부터 단계적 일몰이 예정돼 있었지만 업계의 요청으로 감면 기한이 두 차례 연장됐다. 내년부터 감면율이 20%씩 줄어들어 2026년에는 면세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2019년 기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항공사(FSC)와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등 저비용항공사(LCC)가 관세법을 통해 면제받았던 약 1000억원을 2026년부터 고스란히 부담해야 할 처지다.
특히 업계는 FTA를 통한 부품 관세 면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FTA를 이용하려면 항공기, 엔진 제작사가 해당 국가에서 부품을 생산했다는 원산지 증명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원산지 증명을 요구하는 국가가 한국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급이 우위인 항공기 시장에서 제작사가 행정력 투입을 꺼린다고 업계는 설명한다. 2019년 항공사들이 부품 관세 유예에 원산지 증명을 활용한 비율은 16%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항공산업 특성상 원산지 증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항공기 제조는 일찌감치 다국적 생산체계가 구축돼 있어 전 세계 납품업체로부터 수 많은 부품을 조달받는다. 미국과 유럽에 본사를 둔 보잉과 에어버스가 순수하게 해당 국가에서 창출한 부가가치는 20%가 채 안된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한국항공협회 관계자는 "항공기 제작사로부터 직접 부품을 조달하더라도 제작사가 해당 부품을 직접 만들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이는 원산지 증명이 더 어렵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싱가포르의 경우 물류창고 개념으로 부품을 조달받는데 부가가치가 거의 0%에 가깝다"며 "밸류체인이 워낙 복잡한 업계 특성 때문에 원산지 추적관리를 안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영종도=뉴스핌] 정일구 기자 =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여객기들이 멈춰 서있다. 2020.04.22 mironj19@newspim.com |
◆ 국토부 "TCA·관세법 필요" vs 산업부 "항공기 제조업 보호해야"…기재부 "의원입법 논의"
이런 이유 때문에 항공업계는 TCA 가입 또는 관세법 일몰을 취소하자고 제안한다. 다만 관세법은 정부가 특례를 없앤 경험이 있어 TCA 가입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항공협회는 올해 초 국토부를 통해 항공부품 관세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해달라고 국무조정실에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항공기 제조업계를 육성해야 하는 산업부는 TCA 가입에 따른 여파가 만만치 않을 거라며 우려하고 있다. 국내 항공기 제조산업은 아직 영세한 수준으로 TCA에 가입하면 무역분쟁 등의 위험성으로 인해 정부 지원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국내 항공우주산업 전체 시장은 7조원 규모로 자동차(186조원), 반도체(114조원), 조선(45조원) 등 다른 산업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항공우주(KAI), 대한항공,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주요 3사가 항공산업 전체 매출의 83%, 고용의 57%를 점유하고 있을 만큼 소수 기업 의존도가 높다는 것도 한계다. 전체 기업의 76%는 자본금 50억원 미만으로 영세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산업부는 2018년 TCA에 가입할지 검토했지만 최종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TCA 가입에 대한 영향을 구체적으로 파악해보자는 취지로 용역을 검토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국내 항공기 제조업계는 아직 연구개발(R&D) 등 정부지원이 필요한데 TCA에 가입하면 이런 부분을 보고해야 한다. 타국이 문제를 제기하면 무역분쟁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며 "가입을 결정하더라도 수년의 시간이 필요한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검토하기 위해 관계부처와 조만간 머리르 맡댈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관세 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업계 요구를 반영할 필요가 있지만 이를 실행하기 위한 도구는 타 부처가 갖고 있어 용역 등을 통해 적합한 방식을 찾고자 한다"고 말했다.
다만 TCA 가입은 시간이 필요한 만큼 일단 관세법 일몰을 유예해야한다는 게 업계와 국토부의 주장이다. 하지만 관세법을 관할하는 기획재정부는 과거 논의를 통해 결정된 사안을 뒤집는 것은 어렵다는 분위기다. 이에 정부 입법 대신 의원 입법을 통해 일몰 유예가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중견·대기업에 대한 관세 감면 축소는 조세 특례 정비 차원에서 국회가 심의, 의결한 사안"이라며 "관세법 89조 관련 의원입법 등이 발의되면 올해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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