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오승주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11일 '전 국민에게 가상자산을 지급하겠다'고 언급하자 관가에서는 시큰둥한 분위기다. 아직 구체화된 공약이 아닌 만큼 일단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11일 국회에서 열린 '청년, 가상자산을 말하다' 행사에서 "부동산 개발에서 발생한 이익을 기초자산으로 전국민에게 가상자산을 지급하겠다"면서 "전 국민이 이것을 갖고 거래하면 일종의 가상자산 시장이 형성된다는 생각을 심도있게 내부 논의를 하고 있다"고 제시했다.
이 후보는 그동안 "부동산 투기, 토건비리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토지일원화로 생기는 불로소득은 반드시 100% 공공에 환수해 국민 모두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신념"이라고 수차례 강조해 왔다. 부동산 부분에 관한 이재명 후보 공약의 핵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공개발에서 환수한 이익을 전국민에게 가상화폐로 지급하겠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당연히 관가의 반응은 다양하다. 여당 대선후보의 공약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 일단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다소 황당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청년, 가상자산을 말하다'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1.11.11 leehs@newspim.com |
정부의 한 관계자는 "아직은 논의단계라서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사견을 전제로 "다소 황당하다"면서도 "세부적인 내용을 봐야할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재명 후보가 언급한 내용을 보면, 적지 않은 의문점이 생긴다. 관가에서도 실현 가능성에 대해 아직은 물음표를 던지는 분위기다.
부동산 개발이익을 주식이라고 가정하면, 전 국민이 지급받은 가상화폐를 주식처럼 거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래의 등락에 따른 이익과 손실은 국민들 몫이다.
이 과정에서 거래가 복잡해 참여하기 싫은 국민들을 상대로 가상화폐 자산을 사들이는 '업자'들도 나올 수 있겠다 싶었다. 국민에게 지급된 가상자산 상당수가 '깡'으로 팔려 결국 가상시장이 '선수들만의 게임'으로 전락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가상자산 거래시장은 참여하고 싶은 이들만 자기책임 하에 참여하는 시장이다. 하지만 전국민에게 나눠준다면 게임이 달라진다. 전 국민이 참여자가 되는 국민 가상시장이 되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지급된 돈이 선수들에게 쏠려 많게는 수십조원의 국민자금이 '그들만의 오징어게임'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개발이익 환수는 계속 일어날테니, 국민들이 그때마다 지급받는다면 '그들만의 오징어게임'은 판이 커질 게 분명해 보인다.
물론 법제화 과정에서 지급된 가상화폐의 매매를 금지할수도 있다. 그러면 받은 가상화폐를 식당 등 현실에서 사용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문제는 '널뛰는 가격'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지 여부다.
이재명 후보가 주장하는 가상화폐를 편의상 '이재명 코인'이라고 가정하자. '이재명 코인'은 가상화폐 거래시장에 참여자들에 의해 시시각각 가격이 변할 것이다. 비트코인이 한참 전국민 관심사로 떠올랐을 때 '매매 기준가격'은 짧은 시간에 숨고르기도 힘들 만큼 등락을 거듭했다.
식당에 점심 한끼를 먹으러 간다고 가정하면, 가상화폐 거래 기준가에 따라 '식당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가격이 다를 것이다. 들어갈 때 8000원이던 가격이 나올 때 1만원이 될 수도 있고, 4000원이 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식당 주인이나 고객 모두 가상화폐 거래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당연히 현금이나 카드결제를 원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화폐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화폐의 근본적인 목적은 실물경제의 법적 안정성을 위한 것이다.
'종이조각'에 불과한 세종대왕이 그려진 1만원권 지폐가 힘을 얻는 것은 물품을 주고 받을 때 '이 물건은 1만원 가치가 있다'는 신뢰, 즉 법적 안정성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화폐의 안정성이 무너지면 화폐는 목적을 잃는다.
식당 등 현실화폐로 사용할 경우 당일 기준가를 고시해 거래를 하게 한다 해도, 하루마다 달라지는 가격에 실물경제의 혼란은 불가피할 수도 있겠다.
널뛰듯 뛰는 '이재명 코인'이 원화 가격에 혼란을 주게 되면 국제금융과 연동된 외환거래도 혼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수출과 수입 가격도 혼돈이 오고, 결국 한국경제에는 부담이 가중될 것이다.
물론 이같은 생각이 '너무 앞서간 기우'일지도 모르겠다. 이재명 후보측이 이에 대한 준비가 너무 잘 돼 있어 자신있게 내놓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1.11.09 leehs@newspim.com |
'이재명 코인'보다 관가에서 더 우려스럽게 여기는 것은 '가상자산 시행 1년 유예'다. 이미 법 통과가 끝나 시행을 앞둔 지금, 가상자산에 대한 세금을 1년 뒤에 걷겠다는 게 이재명 후보의 주장이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가상자산으로 벌어들인 이익을 복권 당첨금과 유사한 기타소득으로 분류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당장 내년(2022년) 1월부터 시행한다. 연간 가상자산 소득에서 250만원을 공제하고 초과분에 세율 20%를 적용한다.
그런데 이재명 후보는 시행 1년 미룬 가상화폐 과세를 또다시 1년 유예하겠다는 것이다. 여당도 대선후보의 발언이다 보니, 적극 동참한다. 거대 여당을 기반으로 또다시 법을 바꿔 유예를 할 가능성이 커진다.
유예의 명분은 '인프라 부족'이다. 즉, 세금을 거둬들일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인데, 기획재정부 등 과세당국은 '인프라는 충분히 마련돼 있다'고 대응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프라는 충분히 마련돼 있다"며 "여야가 합의해 가상자산 과세를 준비했는데 유예를 동의하라고 강요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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