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준형 기자 = 무려 11개월이었다고 한다. 헤어진 전 남자친구의 집착이 스토킹으로 바뀐 건 지난해 12월부터였다. 집에 무단 침입하고, 옷과 가방을 훔쳐 달아났다. 차량 열쇠를 훔쳐 차 안에 타고 있다가 들키기도 했다. 지난 6월부터는 직접적으로 몸에 상해를 입히고, 흉기로 위협해 감금까지 한 사실이 드러났다.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다 못한 여성은 경찰에 스토킹을 신고하고 신변보호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앙심을 품은 전 남자친구는 여성을 향해 흉기를 휘둘렀다. 스마트워치로 두 번씩이나 호출했지만 경찰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전 남자친구의 스토킹에 시달리던 여성은 끝내 숨을 거뒀다.
김병찬의 잔혹한 범행은 스토킹이 안일하게 여겨서는 안 될 중범죄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스토킹은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수준을 넘어 다양한 방법으로 타인에게 공포와 불안을 반복적으로 주는 행위다. 직접적인 접촉 없이도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주는 폭력이다. 스토킹 피해자들의 고통은 상상하기 힘든 수준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스토커가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한다. 그에 따른 트라우마는 평생을 따라 다닌다.
박준형 사건팀장 |
피해자가 고통 받는 동안 정작 가해자는 세상을 활보하고 다녔다. 장기간 이어지는 스토킹에 삶이 무너져버려도 가해자는 제대로 된 처벌조차 받지 않았다. 경범죄 처벌법 적용을 받아 범칙금만 부과되는 수준에 그쳤다. 그사이 무수히 많은 피해자들이 쏟아졌다. 극심한 스토킹은 폭행, 성범죄, 살인 등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스토킹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뒤늦게 가해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이른바 '스토킹처벌법'이 지난 3월 24일 국회를 통과해 10월 21일부터 시행됐다. 1999년 처음 발의된 이후 무려 22년이 걸렸다.
그러나 스토킹처벌법은 피해자 보호 측면에서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보복이 두려워 제대로 신고를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반의사불벌' 조항을 두고 있다. 가해자에게 채워야 할 스마트워치는 오히려 신변보호 대상자에게 지급된다. 스토킹처벌법은 있지만 스토킹피해보호법은 없어서 경찰이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근거 법령이 부족한 점도 문제다. 피해자 보호가 미흡하다보니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
스마트워치 외에 다양한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 국회 통과 이후 법안이 시행되기까지 약 7개월의 시간이 있었다. 그럼에도 또 안일한 대처에 머물렀다. 아직도 스토킹을 심각한 범죄로 보지 않는 시대착오적 발상 때문일 것이다. 그러는 동안 김병찬은 전 여자친구를, 그보다 앞서 김태현은 스토킹하던 여성과 여성의 여동생, 어머니를 차례로 살해했다.
"스토킹이 성폭행이나 살인 등 중범죄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면 신속하게 가해자를 분리시켜야 한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설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스토킹이 명백한 범죄로 인정되기까지 22년이 걸렸다. 끔찍한 범죄에서 피해자를 온전히 보호하기까지 또 다시 20년이 걸려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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