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임은석 기자 = 정부가 '대출'만 전담해오던 수출입은행이 '보증' 업무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무역보증을 전담해온 무역보험공사의 기능이 약화되어 자칫 중소기업의 무역보험료가 인상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꾸준히 늘어가고 있는 중소기업 수출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소관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강하게 반대해 왔으나, 정권 말 기획재정부가 관련부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수은과 무보의 불필요한 경쟁은 중소기업 수출지원 기능이 약화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우려다.
◆ 기재부, 산업부 반대에도 '수은 대외채무보증 확대' 추진
13일 기획재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수은의 대외채무보증을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산업부와 무역보험공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
이는 지난 7월에도 기재부가 무리하게 추진하다 관련부처의 반대로 인해 보류된 바 있다. 지난 7월 5일 열린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동일한 내용을 밀어붙였으나 당시 유명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반대한 바 있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연구기관장 및 투자은행 전문가 간담회'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1.12.08 yooksa@newspim.com |
홍남기 부총리는 "수은의 시행령 제약으로 해외수주가 무산된 사례는 최근 4년간 최소 4건 이상에 121억달러로 추정된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이는 수은이 자신들의 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사업이 무산된 이유는 다른 이유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당 해당 프로젝트들은 환경문제로 사업 추진이 중단되거나 사업성 부족으로 인해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사업을 철수한 것들이다. 수은이 주장하는 시행령 제약에 따른 수주실패의 정황이나 근거는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아래 표 참고).
업계 한 관계자는 "수은의 주장대로라면 수은은 무보-수은간 협약에서 정한 프로젝트 공동 지원에 관한 협의 절차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지원을 포기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불필요한 경쟁 우려되는데…기재부 '수은 밀어주기' 왜?
공공기관 사이에 불필요한 경쟁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기재부가 무리하게 수은을 밀어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 각국은 자국의 수출 지원을 위해 수출신용기관(ECA)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1개 기관이 대출과 보증을 동시에 취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자칫 불필요한 경쟁으로 인해 국가적인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이같은 이유에서 지난 1992년 수은과 무보를 분리하고 수은은 대출, 무보는 보험과 보증업무를 전담하도록 역할을 분리했다. 하지만 수은에서 법적근거 없이 대외채무보증을 수행하면서 감사원의 지적까지 받은 바 있다.
2021.12.13 fedor01@newspim.com |
감사원은 2006년 8월 수은의 부당한 업무확대를 지적하고 '수은은 외국인에 대한 지급보증을 관계 부처·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법적근거를 마련해 취급하고 수은법의 규정에 어긋나게 업무를 확대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2008년 수은의 대외채무보증을 일부 허용하는 근거를 마련하되 무보와의 업무 중복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수은법령이 개정됐다. 업무중복에 따른 마찰을 예방하고 수주지원 확대효과를 도모하기 위해 양 기관 협의 하에 시장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조항도 시행령에 반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재부가 무리하게 '수은 밀어주기'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업계의 시각도 곱지 않다. 업계에서는 기재부 출신의 수은 행장에 낙하산 인사가 가는 관행과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현 방문규 수은 행장은 기재부 차관 출신이고, 전임 은성수 행장도 기재부 1급 출신이다.
◆ 무보 중장기 사업수지 악화 우려…3만여 중소기업 무역보험 인상 우려
특히 수은의 대외채무보증 확대시 무보의 중장기 사업수지 악화 우려에 따른 중소수출기업 무역보험료 인상과 고위험시장 무역보험 지원 위축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무보에 따르면 수은의 대외채무보증 확대시 중장기보험 위축, 보험료 수입 감소로 무보를 이용 중인 3만여 중소수출기업들의 보험료 급등이 예상된다.
또 법률에 따른 장기 수지균형 유지를 위해 상대적으로 대금미회수 위험이 높은 수출초보기업과 신흥시장에 대한 무보의 적극적인 지원이 어려워져 중소기업들의 해외시장 개척에 장애 불가피한 상황이다.
중소기업 수출 추이 [자료=중소벤처기업부] 2021.10.25 biggerthanseoul@newspim.com |
전문가들도 수은의 대외채무보증 확대가 공적수출신용제도의 심각한 훼손이고 중소수출기업 위험관리 체계의 와해로 인한 중소기업 수출감소를 우려를 표명했다.
김상만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WTO에서는 장기수지균형을 달성하지 못한 ECA의 수출지원을 금지보조금으로 특정하고 있다"며 "무보의 수지가 악화될 경우 향후 수출 경쟁국들에서 제기되는 각종 보조금 분쟁 과정에서 우리 기업들에 대한 보조금 혜택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 높다"고 우려했다.
이어 "수은의 대외채무보증 업무조정은 중소수출기업을 포함한 정부의 수출지원 정책 전반과 업무조정으로 파생될 수 있는 국제 보조금 이슈 등 관련 사안들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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