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총성 없는 전쟁터'로 변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 반도체 전문가인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낙점되면서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각 국가의 정부와 자국 기업들이 연합전선을 펼치며 자국 정부의 지원이 절실해진 상황. 이 교수는 반도체 기술의 새 장을 연 세계적 석학으로, 정부와 산업계를 아우를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다. 이 교수는 인텔보다 먼저 벌크 핀펫 기술(FinFET)을 개발해 사용료를 받았고, 삼성전자와 특허 소송을 벌이는 등 반도체 업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지난 10일 초대 내각에서 활동할 8개 부처 장관 인선안을 발표하며 이 교수를 "세계적인 반도체 기술 권위자"라며 "비메모리 반도체 업계 표준 기술인 벌크 핀펫 기술을 세계 최초 개발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벌크 핀펫 기술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에 쓰이는 3차원 트랜지스터 기술이다. 이 교수가 지난 2001년 원광대 재직 시절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과 합작해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로, 반도체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교수는 2003년 미국에 특허를 출원하고, 지난 2016년 7월 카이스트 자회사인 KIP와 특허 사용료를 일정 비율로 나눠 갖기로 하고 특허권을 양도했다. 인텔과 애플은 지난 2012년과 2019년 KIP와 합의 후 사용료를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KIP는 삼성전자가 2015년 갤럭시S6부터 이 기술에 대한 특허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다며 2016년 삼성전자를 상대로 미국 텍사스 동부지법에 특허 침해 소송을 냈다. 2018년 현지 배심원단은 삼성전자의 KIP 특허 침해를 인정했다.
배심원단이 KIP에 4억 달러를 배상하라고 평결을 내리자 삼성전자는 "사용 중인 핀펫 기술은 자체 개발한 기술"이라며 항소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다 2020년 양 측은 관련 소송에 합의를 하고 소송을 취하하기로 했다. 두 회사는 구체적인 합의 조건은 공개하지 않았으나 인텔과 애플처럼 특허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 교수는 서울대로 자리를 옮겨 지난해 5월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를 방문한 윤석열 당선인과 연을 맺었다. 당시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나 잠행을 하던 중 "반도체를 배우고 싶다"며 서울대를 방문했다. 이 때 윤 당선인을 안내한 사람이 이 교수다.
윤 당선인은 지난 7일 헬기에서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내려다보며 "반도체 산업 등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인 첨단 산업을 더 발굴하고 세계 일류로 키워 내겠다"며 '반도체 초강대국 육성' 공약 수행의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윤 당선인의 반도체 공약 수립에도 이 교수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2020.10.26 pangbin@newspim.com |
삼성전자와의 과거 악연은 있지만 극심해지고 있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든든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각 국가의 정부와 자국 기업들이 연합전선을 펼치는 격전지로 변했다.
글로벌 기업 경영에 미국의 입김이 점차 세지면서 기업 차원이 아닌 정부 차원의 지원도 필요해졌다. 지난해 미국 정부가 각 기업들에게 요구한 반도체 핵심 자료 제출 요구가 대표적인 사례다.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미국은 삼성에 현지 투자를 요구하는 한편 영업기밀이 담긴 생산·매출 자료를 제출하라며 다각도로 압박해 왔다.
미중 무역분쟁과 공급망 리스크를 겪으며 미국은 자국 투자를 유도하는 한편 해외 기업들의 인수합병(M&A)을 무산시키는 등 강력한 제재 조치로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 삼성전자도 미국에 20조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투자를 결정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정부의 지원도 절실하다. 앞으로 양 국의 협상 과정에서 우리 기업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반도체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선 이 교수의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 교수의 지명은 '반도체 초강대국 육성'을 위한 윤 당선인의 의지로 보인다"며 "벌크 핀펫 기술을 개발한 만큼 국내 반도체 기술 자립화는 물론 오랜 교수 생활에서 비롯된 인재양성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s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