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정치권이 연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으로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당대회가, 국민의힘은 당 지도부 간 내홍 문제가 있어 서로간 강대강 대치는 자제하는 모양새지만 내부 정리가 되고 나면 다시 전면전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최근 검찰이 이른바 '6시간 행적'에 대해 본격적으로 수사 착수하면서 윤석열 정부와 문재인 정부간 '신구권력' 싸움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북에서 피격돼 숨진 공무원 시신 등을 찾기 위해 해경의 수색 모습[사진=인천해양경찰서]2020.09.30 hjk01@newspim.com |
◆ 해수부 공무원이 북한군에 피격 사망…文정부는 "월북 시도"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은 지난 2020년 9월 22일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가 북한에 의해 피격당한 사건이다.
당시 이 씨는 소연평도 남방 1.2마일 해상에서 어업지도선에 탑승한 채 어업지도 업무를 수행하다 실종된 후 이튿날 오후 3시 30분쯤 황해도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한 수산사업소 선박에 발견됐다. 이후 이 씨는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문제는 정부가 이 사건을 브리핑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우리 정부는 이 씨가 업무 중 실종돼 피격당한 것이 아니라 자진 월북을 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고 북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는 것이다.
해양경찰청은 논란이 일자 기자간담회에서 이 씨에게 수억원의 도박빚이 있었기에 월북 동기가 충분하다고 발표했다.
이에 유족은 월북 사실을 믿을 수 없다며 정부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정부는 국가안보 등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이후 유족은 법원에 정보공개거부 취소를 청구했고, 지난해 11월 1심은 청와대 안보실장이 대통령에게 이 씨의 실종사실을 보고한 문건과 북측의 발견 첩보보고서 등을 열람하도록 하라고 유족 측 손을 들어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하면서 관련 기록물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했다. 대통령기록물이 되면 15년간 해당 자료가 봉인된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TF' 유족 초청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2.06.24 kilroy023@newspim.com |
◆ 정부 항소 포기로 다시 소환…野는 '발끈'
이 사건이 다시 불거진 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1심에서 패소한 정보공개청구 항소를 포기하면서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유족과 만나 진상조사를 약속해왔다.
같은 날 해경은 2년 전의 판단을 뒤집고 "자진월북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국방부 역시 "해경의 수사 종결과 연계하여 관련 내용을 다시 한 번 분석한 결과,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었다"며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정황이 있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그러자 논란은 금세 국회로 옮겨 붙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국정기획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마치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에 매달려 우리 국민 보호에 소홀했던 것처럼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라며 "당시 다각도로 첩보를 분석하고 수사를 벌인 결과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같은 달 21일 서해상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공세에 들어갔다. 주로 당시 정부가 이 씨의 구조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북한과의 '화해 무드'가 깨지지 않도록 이 씨가 월북했다고 발표한 것을 문제삼고 있다.
민주당도 TF를 구성했지만 진상조사보다는 국민의힘의 정치적 공세에 대응하는 성격이 짙다.
[서울=뉴스핌] 황준선 기자 =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친형 이래진 씨와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가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서주석 전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과 해양경찰청 간부들 사이에서 '해경왕'으로 불리던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 윤성현 전 해경 수사정보국장, 김태균 전 해경 형사과장을 공무집행방해죄, 직권남용죄 혐의 등으로 고발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6.28 hwang@newspim.com |
◆ 양당 모두 전면전은 안 나서지만…검찰 수사가 뇌관으로
갈등 상황은 명백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이 사건으로 강대강 대치를 벌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양당 모두 내부 조직 정비가 시급한 현안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현재 전당대회를 2달여 앞두고 차기 당권을 누가 쥘 것인지가 초유의 관심사다. 국민의힘도 이준석 대표의 성상납 의혹 무마 시도에 대한 징계로 시끌시끌하다.
다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 검찰이 최근 월북 발표 당시의 전후 사정을 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최창민 부장검사)는 유족으로부터 각종 자료를 제출받아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특히 검찰은 지난달 29일 이 씨의 형 이래진 씨를 상대로 고발인 조사를 진행하면서 사건 당일 문재인 정부의 '6시간 행적'을 집중적으로 물었다고 한다. 이 6시간은 이 씨가 북한군에게 나포된 사실을 확인한 시점부터 사망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검찰 수사에서 당시 정부가 구조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정황이 나올 경우 문 전 대통령의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7시간' 정황을 수사해 관련자들을 재판에 넘긴 것과 같은 상황이 충분히 재현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대통령기록물까지 봐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 추가적인 공방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형 이 씨는 지난달 27일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민주당이 오는 13일까지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열람을 의결하지 않을 경우 문 전 대통령을 고발하겠다"고 했다.
adelant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