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아영 기자 = "최근에 오세훈 서울시장, 정문헌 종로구청장 다 다녀갔는데 이런 방에 에어컨을 어떻게 놓나. 그런 사람들 왔다가도 별로 바뀌는 건 없다, 벽도 얇고 방도 좁아 에어컨은 꿈도 못 꾼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은 처마 밑이나 계단 참 등 그늘 곳곳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일명 '여관 골목'이라고 불리는 후암동의 메인 길목의 풍경이다. 이곳 주민들의 많은 수는 좁은 여관방에 세를 두고 살고 있다.
이날 서울 낮 최고 기온은 31도까지 치솟았다. 106호에 살고 있는 A씨는 "에어컨 사는건 고사하고 선풍기 트는 것도 버거워 밖에 나와있다"며 "설치를 해준다면 좋기야 하겠지만 방 안은 어렵고 복도에 설치하는 수준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A씨가 가리킨 복도는 이미 사람 한명이 지나기도 좁아 에어컨을 두게 되면 통행하기 불편해 보였다. 앞집에 사는 B씨는 폭염에 등목을 하고 있었다. B씨네 집에도 에어컨은 없다. 그는 "그래도 오늘은 선선한 편"이라고 말했다.
건물 그늘 외에도 주민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었다. 인근에 위치한 새꿈어린이공원 무더위쉼터에는 천막 하나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주민들은 각자 가져온 음식들을 펼쳐 나눠 먹으며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었다. 일부 주민들은 더위에 못 이겨 그늘진 공원 바닥에 돗자리 없이 누워 있기도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최근에서야 볼 수 있게 된 풍경이다.
그러나 이날 코로나 신규 확진자수는 3만8882명으로 1주 전(1만9323명)보다 2배 이상 늘어나는 등 재확산세가 뚜렷한 양상을 보이며, 주민들은 우려감을 표했다.
주민 A씨는 "날씨가 더우니 집에 있을 수 없어 오후에는 이렇게 쉼터나 그늘진 곳에 나와 있는 편"이라며 "코로나 때는 이조차도 못해서 더욱 힘들었다. 코로나 재유행이라고 하는데 별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뉴스핌] 최아영 기자 = 15일 오후 서울 중구 돈의동 쪽방촌. 2022.07.15 youngar@newspim.com |
오후 2시께가 되자 쪽방촌사무소 앞에는 무더위에도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줄을 길게 늘어섰다. 초복을 맞아 한우곰탕을 나눠준다는 소식에 땡볕 밑에 선 것이다.
접이식 손수레를 끌고 나온 B씨는 "이제 곰탕은 받았고 이따 4시에 나눠주는 생수도 받아야 한다"며 "기초생활수급자라 매달 지원금을 받아 생활하는데 요즘엔 뭘 사려고 해도 물가가 너무 올라서 물건을 직접 사기가 겁난다"고 했다.
앞서 지난 11일 오후 1시경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은 주민들 대다수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소나기가 한 차례 지나갔음에도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집에서 나가는 이들이 적은 것이다. 이들은 방문을 활짝 열고 폭염에 맞서고 있었다.
쪽방촌 초입에 살고 있는 C씨(66)는 문턱에 걸터앉아 감자를 깎고 있었다. 동네에서 비교적 젊은 축인 C씨는 어르신들에게 반찬을 가져다주는 등 주민들을 챙겨왔다.
[서울=뉴스핌] 최아영 기자 = 11일 오후 서울 중구 돈의동 쪽방촌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방문을 열고 문 밖에 앉아있다. 2022.07.15 youngar@newspim.com |
C씨는 "최근 몸이 안좋으신 80대 어르신을 돌보고 있는데 날이 더워 걱정"이라며 "이곳 주민 대다수가 어르신들이라 올 여름엔 어떨지 모르겠다. 지난 여름에도 여럿 돌아가셨다"고 토로했다.
C씨의 방은 공용 화장실 바로 옆으로 방 벽도 가벽으로 돼 있다. 그는 "벽도 얇고 방도 좁아 에어컨은 꿈도 못 꾼다"며 "최근에 오세훈 서울시장, 정문헌 종로구청장 다 다녀갔는데 이런 방에 에어컨을 어떻게 놓나. 그런 사람들 왔다가도 별로 바뀌는 건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에어컨이 없는 방도 많지만 있더라도 이용하는 이는 거의 없다. 반대편 골목에 사는 D씨는 "우리 집엔 이미 에어컨이 놓여있다"며 "그렇지만 전기세 때문에 있어도 켜지는 않는다. 전기세를 절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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