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천정부지 유가를 잡겠다며 인권 문제를 후순위로 잠시 미루고 취임 후 첫 중동 방문에 나섰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결국 소득 없이 귀국해 미국 내에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현지시각 기준으로 지난 16일 나흘간의 중동 방문 일정을 마무리하고 백악관으로 돌아왔다.
순방 하이라이트로 꼽혔던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의 만남은 주먹 인사에서부터 증산 합의가 빠진 회담 내용에 이르기까지 미국인들의 빈축을 샀다.
중동 방문 일정 중 눈을 감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모습 [사진=로이터 뉴스핌] 2022.07.18 kwonjiun@newspim.com |
◆ "득은 없고 실만 남았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중동 방문의 최우선 목적은 유가 안정이었지만 관련 성과는 내지 못한 채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배후로 지목된 빈살만 왕세자의 위상만 다져주는 꼴이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5일 빈살만 왕세자를 비롯한 사우디 당국자들과 만난 뒤 기자들에게 "미국으로의 (원유) 공급 증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사우디 측에서도 이 같은 긴급성을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우디 왕실과의) 회동 내용에 기초하면 몇 주 내로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무장관은 바이든이 떠난 직후 "이번 회담에서 양국 간 원유 증산 관련 합의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또 빈 살만 왕세자는 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에서 물가 폭등의 원인을 서방 주도의 친환경 정책 탓으로 돌리면서 "사우디가 이미 최대 생산 능력치인 하루 1300만 배럴까지 증산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를 넘어서는 추가 생산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사우디 원유 증산합의를 두고 양측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백악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과 사우디 빈살만이 만나 증산을 통해 에너지 가격 안정에 함께 노력하기로 한 것은 이미 발표한 대로 엄연한 사실이라면서 다만 사우디 입장에서는 OPEC+ 회원국들을 의식해 합의 사실을 공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및 사우디 핵심 관계자를 인용, 구체적인 증산 규모와 방법이 오는 8월 3일 있을 OPEC+ 회의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카슈끄지 암살 문제에 대해서는 빈살만 왕세자가 비웃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빈살만 왕세자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카슈끄지 암살 문제와 관련해 "나는 미국 대통령이 인권 문제에 침묵하는 것은 모순된다는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며 "나는 항상 우리의 가치를 옹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자회견 후 외신 기자가 빈살만 왕세자를 향해 카슈끄지 유가족에게 사과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지만 왕세자는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렸고, 바이든 대통령에게 사우디가 아직 왕따인지를 묻는 또 다른 기자의 질문이 나오자 왕세자가 옅은 미소를 띠는 모습이 포착됐다.
외신은 이를 두고 왕세자의 '비웃음'이란 표현을 써가며 바이든 대통령이 굴욕을 당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방문이 빈살만 왕세자에게만 득이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인권 옹호자로서 바이든의 명성은 빈살만과 주먹을 부딪치는 사진이 전 세계에 퍼지면서 잠재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고 지적했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빈살만 왕세자 입장에서는 고립됐던 외교무대로 다시 나아갈 기회를 얻게 됐다"고 평가했다.
친(親)민주당 성향 무소속 의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17일 ABC방송 '디스 위크'에 출연해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을 공개 저격했다.
샌더스 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하지 말았어야 한다면서 "사우디 지도자는 워싱턴포스트 언론인의 살인과 연관돼 있으며, 그런 종류의 정부는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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