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1만원도 넘지 않는 치킨이 화제다. '3만원 시대'가 머지않은 치킨 가격에 등 돌린 고객들이 직접 발품을 팔며 자연스러운 붐이 일어났다. 과거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로 판매가 중단된 '통큰치킨'의 사례와 달리 지금은 소비자들이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후라이드 기준 한 마리당 6990원에 판매하는 홈플러스의 '당당치킨'은 지난 6월 30일부터 판매를 시작해 지금까지 판매량이 26만 마리를 넘겼다. 하루 판매량이 1만 마리 꼴이다.
홈플러스가 판매하는 당당 후라이드 치킨 [사진=홈플러스] |
'당당치킨'의 흥행은 홈플러스 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홈플러스는 '당당치킨'을 출시하면서 흔한 보도자료도 배포하지 않았다. 고물가 시대 물가안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발 과정에서 올해 입사한 젊은 바이어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가상승으로 편의점 도시락 판매량이 늘어난 것처럼 소비 양극화 시대 트렌드를 적절히 반영한 효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당치킨'은 생닭을 대량 매입하고 마진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형 마트이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이다. 지난 2010년 롯데마트의 '통큰치킨'이 회자되는 이유다. '통큰치킨'은 당시 파격적인 5000원에 치킨을 판매하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라는 비판이 거세지며 8일 만에 판매를 중단했다.
비난 일색이었던 12년 전과 달리 현재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며 유통업계는 '초저가' 전략을 앞세우고 있다. 특히 물가 방어 '최전선'에 있는 대형마트의 경우 치킨을 비롯해 주요 생필품을 최저가로 판매하고 있지만 비난 여론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유는 먼저 그 사이 크게 오른 치킨값에 대한 반발 심리가 작용했다. 업계 1위 프랜차이즈의 대표 치킨의 경우 2010년 1만4000원이었던 가격은 올해 1만6000원으로, 12년 새 14%, 2000원 올랐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실제로 부담해야 하는 가격은 더 올랐다. '배달앱'의 등장과 함께 배달료를 추가로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 치킨의 배달료가 4000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가격은 43%, 6000원 오른 셈이다.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은 약 21%다.
특히 업계에선 무엇보다 이권 단체나 권력 기관이 아닌 소비자들이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2010년 프랜차이즈와 가맹점의 거센 공세에 시달리던 롯데마트가 '통큰치킨' 판매를 중단한 결정적인 이유는 청와대의 개입이었다.
당시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은 트위터에 "영세 닭고기판매점이 울상지을만 하다"며 "혹시 구매자를 마트로 끌어들여 다른 물품을 사게 하려는 '통큰 전략' 아니냐"고 지적했다. "치킨값도 청와대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는 조롱 섞인 비난이 나왔던 이유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최근 대형마트의 초저가 치킨의 인기와 관련 "유통의 본질은 소비자"라며 "더 저렴한 상품이 있다면 구매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존중받기 시작했다"는 해석을 내놨다.
[서울=뉴스핌] 황준선 기자 =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2022.08.02 hwang@newspim.com |
올해 들어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폐지 공론화도 소비자의 권리가 급부상하면서 이뤄진 결과다.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지난 2012년부터 한 달에 두 번 의무적으로 휴업해야 한다. 영업시간도 제한을 받는데 자정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는 문을 열 수 없다. 영업을 하지 못하는 휴일이나 새벽시간에 대형마트는 온라인 배송도 하지 못한다.
유통산업발전법은 골목상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 아래 소비자의 선택권을 무시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무효화되기는 했으나 앞서 대통령실이 진행한 '국민제안 TOP 10' 투표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안건이 57만7415표로 1위를 차지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통산업도 소비자 관점에서 정책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여론에 힘이 실린 결과"라고 해석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는 규제심판회의에서 다시 다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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