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똑같은 살인 사건인데 누구는 무기징역을 받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구는 징역 10년을 선고받기도 합니다. 이처럼 죄인에게 내리는 형벌의 정도, 통상 죄인이 복역해야 할 기간을 형량(刑量)이라고 하는데요. 판사들은 피고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요소를 양형에 모두 반영해 형량을 정합니다. 같은 듯 보이지만 사건마다 다를 수 밖에 없는 '형량의 법칙'을 뉴스핌에서 8월 한달 동안 5회 걸쳐 들여다봅니다.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1.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집을 나가고 홀로 아이를 키우던 A씨는 생후 9일된 아들을 폭행해 뇌출혈 중태에 빠뜨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과 2심에서 모두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2.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아이가 울며 보채자 생후 2개월 된 딸을 나무탁자에 떨어뜨려 뇌출혈 중태에 빠뜨린 혐의로 기소된 B씨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두 사건은 20대 아버지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자신의 자녀에게 중상해를 입혔으나 지속적인 학대 정황은 없었던 점, 범행 당시 친부 홀로 아이를 돌보고 있었던 점에서 유사하다. 이들에게는 모두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학대중상해),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혐의가 적용됐다.
A씨와 B씨는 1심에서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는 희비가 엇갈렸다. 이는 대다수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의 보호자인 아동학대사건의 특수성에 대한 재판부의 인식 차이로 분석된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 아동학대 주요 통계'에 따르면 학대행위자 중 82.1%가 부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학대행위자와 피해아동과의 관계 [표=보건복지부] |
A씨의 경우 피해아동을 목욕시키던 중 욕조에 머리를 부딪히게 한 뒤 경련을 일으키자 엉덩이와 머리 등을 수회 때리고 심지어 위아래로 흔들어 목을 꺾이게 한 혐의로 2년6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형을, 학대사실이 드러날 것을 걱정해 피해아동에게 치료를 받게 하지 않고 방임한 혐의로 6월 이상 1년6월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아동으로 하여금 향후 정상적인 성장과 발달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뇌손상을 입게 해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지적했다.
다만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있고 별다른 처벌전력이 없는 점, 20대 초반의 나이로 양육에 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 사건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점, 반복적인 학대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해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를 제기했으나 기각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미 원심의 양형은 제반사정을 두루 참작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즉, 아동학대라는 범행의 죄책이 너무 무거워 여러 감경요소를 적용했음에도 실형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yooksa@newspim.com |
반면 B씨는 피해아동이 잠을 자지 않고 울자 화가 난다는 이유로 침대 옆에 있던 나무탁자 위로 집어던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뜨린 혐의로 2년6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형을, 피해아동을 모텔에서 양육하면서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치료 등을 소홀히 한 혐의로 6월 이상 1년6월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아동의 상태를 보면 이 사건 범행의 결과가 매우 중대하다면서도 피고인에게 동종 범죄전력이 없고 피해아동의 모친이 선처를 바라는 점 등 양형조건을 종합해 B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B씨와 검찰이 모두 항소를 제기했는데 항소심은 B씨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 재판부는 B씨와 배우자가 생활고로 인해 모텔과 찜질방을 전전하면서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고 다른 가족들이나 지인들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으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도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한 점에 주목했다.
구체적으로 "피고인은 극심한 생활고와 양육으로 스트레스를 받던 중 밤늦게 피해아동이 울자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이 사건 발생 전까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들의 양육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것으로 보이고 학대행위가 지속적으로 반복됐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한 "피해아동이 계속해서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경제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피고인의 처는 정신적 장애 등으로 정상적인 소득활동을 하기 어렵다"며 "피해아동은 주거지에서 보호자 주도 하에 재활치료도 꾸준히 받아야 하는데 피고인의 처는 이 또한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범행 결과의 중대함에 따른 응보만을 강조하기 보다는 재범예방을 위해 보호관찰 및 수강명령을 조건으로 피고인을 사회로 돌려보내 피해아동의 재활과 양육을 돕도록 하는 것이 실질적인 피해회복이나 아동의 복지 보장이라는 이념에 더 합당한 조치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B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B씨의 안타까운 사정, 피해아동의 재활치료, 남은 가족들의 생계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형량에 참작한 것이다.
이 판결에 대해 한 변호사는 "일반인의 법감정으로 보면 당연히 처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피해아동을 대신 양육·치료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면 그래도 친부가 양육을 하게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피해아동은 피고인으로 인해 치료가 필요하게 됐지만 지금 당장 돈을 벌어서 치료를 해줘야 하는 피고인이 감옥에 가면 이는 피해아동에게 또 다른 아동학대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동학대사건은 일반 형사사건처럼 단순하지 않다"며 "특히 보호자가 가해자인 경우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부분 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양형조건 외에 참작할 만한 사유의 범위가 넓다"고 부연했다.
두 사건은 피고인들과 검찰 모두 상고를 포기하며 형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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