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도로상황과 맞지 않는 표지판이라도 일반적인 운전자가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경우에는 표지에 대한 설치·관리상 하자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A씨가 제주특별자치도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환송 결정했다.
앞서 A씨는 지난 2017년 3월 제주도 여행을 가서 오토바이를 타고 서귀포시 일주동로를 주행하던 중 맞은편 자동차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당시 자동차 운전자 B씨는 A씨의 신호위반이 사고 발생에 기여한 점을 참작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A씨 측은 "사고 당시 유턴을 하기 위해 서 있던 곳은 좌회전을 할 수 없는 도로인데도 '좌회전시, 보행신호시 유턴'이라는 잘못된 신호표지판이 설치돼 있었고 이로 인해 A씨가 착오를 일으켜 반대편 차로에서 좌회전시 유턴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실수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제주특별자치도가 설치·관리하는 표지판은 도로상황과 전혀 맞지 않고 잘못 표기돼 통상 갖춰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하자가 있다"며 "운전자로 하여금 헷갈리게 해 사고를 유발했으므로 국가배상법에 따라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사고는 원고 A의 신호위반과 자동차 운전자 B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해 발생했을 뿐 피고가 설치·관리하는 표지의 하자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표지 중 '좌회전시' 유턴 부분은 도로 현황과 맟지 않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보행신호시' 유턴을 함으로써 충분히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다"며 "그런데도 원고는 표지의 내용과 달리 적색신호에 유턴을 함으로써 이 사건 사고를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표지는 도로에서의 위험을 방지하고 교통의 안전과 원활한 소통을 확보할 목적으로 설치된 교통안전시설이므로 도로의 구조 및 신호체계와 어긋남 없이 설치돼야 하고 도로이용자에게 착오나 혼동을 일으켜서는 안된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표지에는 교차로의 구조와 맞지 않는 기능상의 결함이 존재하는데 이와 같은 결함은 국가배상법 제5조 제1항의 '영조물의 설치 또는 관리상의 하자'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피고로 하여금 A씨에게 2억3500만원 상당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표지의 내용으로 인해 운전자에게 착오나 혼동을 가져올 우려가 있는지 여부는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운전자의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 사건 표지에 유턴이 허용되는 두 가지 경우 중 신호등이 좌회전 신호가 되는 경우는 없는데 이런 경우 일반적인 운전자라면 보행자 신호가 녹색 신호일 때 유턴을 할 것으로 보인다"며 "표지 내용에 일부 흠이 있더라도 일반적인 운전자의 입장에서 상식적이고 질서 있는 이용방법을 기대할 수 있다면 표지의 설치 또는 관리에 하자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사건 사고 이전에 표지가 잘못 설치됐다는 민원이 제기되지 않았고 사고가 발생한 적도 없다는 사정 등을 고려하면 표지에 설치·관리상 하자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강조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는 영조물의 설치·관리상 하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며 원심법원에 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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