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뉴스핌] 고인원 특파원= 제러미 헌트 영국 신임 재무장관이 리즈 트러스 총리가 지난달 발표한 감세안을 대부분 철회한다고 밝혔다. 기업과 가계를 위한 에너지 지원도 대폭 축소한다는 계획이다.
벌써 두 번의 유턴을 겪었던 트러스 총리의 '미니 예산안'(mini budget)이 사실상 폐기 수순에 들어간 셈이다.
트러스 총리에 대한 당 내외 지지 기반이 흔들리는 가운데, 총리의 대표적인 정책마저 폐기됨에 따라 이미 금 가고 있는 총리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런던, 로이터=뉴스핌] 제러미 헌트 영국 신임 재무장관 2022.10.17 koinwon@newspim.com |
CN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헌트 장관은 17일(현지시간) 공개한 약 5분 길이의 영상을 통해 "모든 정부에 가장 중요한 책임은 경제 안정에 필요한 조처를 취하는 것"이라며 "어떤 정부도 시장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공공 재정의 안정성에 대한 명확성을 줄 수는 있다"면서 총리도 이에 동의했고 감세안 철회도 이 같은 필요성을 바탕으로 내려진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헌트 장관은 이를 위해 내년 4월 기본 소득세율을 현재 20%에서 19%로 낮추려 했던 계획을 철회하고, 경제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발된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영국 가계와 기업을 위한 보편적 에너지 요금 지원을 당초의 2년에서 6개월로 단축한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배당세율 인하, 관광객 면세, 주류세 동결 계획 등도 전면 백지화했다.
사실상 트러스 총리의 미니 예산안이 대부분 폐기된 셈이다. 장관은 이들 조치를 그대로 둘 경우 1년에 약 320억파운드(한화 약 52조 1140억원)의 세수가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다만, 미니 예산안 가운데 이미 의회를 통과한 주택 취득세율 인하와 국민보험 분담금 비율 인상 취소만 예정대로 시행하기로 했다.
◆ 감세안 철회에 시장은 환영...파운드화 반등, 길트채 금리는 하락
일단 시장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CNBC에 따르면, 헌트 장관의 발표 직후 17일 런던 외환시장에서 파운드화 가치가 상승해 1파운드에 1.1414달러대에서 거래됐고, 영국 길트채 10년물 금리(가격과 반대)는 39bp 하락하며 3.99%대로 밀렸다.
[영국 길트채, 30년, 10년, 2년물 금리(위에서 부터 차례로) 차트, 자료=CNBC] koinwon@newspim.com |
헌트 장관은 이날 오후 의회에 질의서가 담긴 성명서 전문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해당 조치가 시장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 시장에 '안정과 신뢰'를 불어넣기 위해 전문 공개에 앞서 간략한 내용을 공개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3일 트러스 신임 영국 총리는 총 450억파운드(약 73조2850억원)의 대규모 감세안을 골자로 한 예산안을 내놨다가 시장 혼란을 야기했다.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이 물가 안정을 위해 긴축에 나선 상황에서 정부가 에너지 지원책을 비롯한 감세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의 긴축 행보와 엇박자를 이루는 감세안을 감당할 영국 정부의 재정 능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 등 주요 신용평가사들이 영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잇달아 하향하는 굴욕을 겪었고, 국채 가격 폭락에 영국 연기금이 줄도산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이에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긴급 채권 매입이라는 긴급 처방을 내렸으나, 영국 정부의 재정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되며 채권 시장의 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이런 비판에도 정책 수정은 없다고 버티던 트러스 총리는 결국 14일 영란은행의 긴급 채권 매입 종료를 앞두고 결단에 나섰다. 소득세 최고세율 45% 철폐 계획을 철회하고 법인세 동결 계획도 백지화했다. 또 이날 트러스 총리는 쿼지 콰텡 재무장관을 해임하고 제러미 헌트 전 외무장관을 후임으로 앉혔다.
◆ 골드만삭스, 영국 내년 GDP 성장률 전망치 -0.4%→-1.0%로 하향
이날의 결정과 관련해 영란은행의 전 금융안정 부총재인 존 기브는 이날 아침 B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재무부 유출 문건에서 영국의 재정 적자가 700억파운드(약 11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헌트 장관은 공공지출을 아무리 줄여도 막대한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힘들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철회되지 않고 남아았던) 약 250억파운드 규모의 감세안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캐피털이코노믹스(CE)의 폴 애시워스 수석 경제학자는 "총리가 에너지 지원책을 당초 예정된 2024년 10월에서 내년 4월까지만 제공하는 것으로 수정함으로써 재정적 불확실성은 줄였지만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로 인해(에너지 지원책 축소)로 영국의 인플레이션이 더 높은 수준에 오래갈 가능성이 커졌으며, 가계들의 실질소득이 더 빠르게 줄고 침체도 더 깊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지금 예측으로는 영국의 금리가 현행의 2.25%에서 5%까지 오르고 국내총생산(GDP)은 2%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앞서 16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영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0.4%에서 -1%로 낮춘다고 밝혔다. 내년 말 기준 근원 인플레이션 전망치는 3.3%에서 3.1%로 조정했다.
보고서는 "성장 모멘텀 약화와 재정 여건 악화, 내년 4월 법인세 인상 등을 감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조정했다"며 "내년에 더 심각한 경기 침체가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런던 신화사=뉴스핌]주옥함 기자=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가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2.09.06.wodemaya@newspim.com |
◆ '사면초가' 트러스..."보수당 의원 100명 이번 주 축출시도" 보도
한편 취임하자마자 내놓은 핵심 정책이 대부분 철회되는 굴욕을 겪은 트러스 총리는 당 내외에서 지지율이 급락하며 사면초가에 몰린 상황이다.
타블로이드지 데일리메일은 트러스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의원들이 이번 주 트러스 총리 축출을 시도할 것이라고 16일 보도했다
매체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100명이 넘는 보수당 하원 의원이 보수당 경선을 주관하는 1922 위원회 그레이엄 브래디 위원장에게 트러스 총리에 대한 불신임투표를 요청하는 서한을 이번주 제출하려 한다고 전했다.
보수당의 지지율도 급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 여론조사업체 오피니움이 실시한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현 상황에서 총선이 열리면 보수당은 현재 차지한 356석 가운데 219석을 잃으며 노동당에 완패할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노동당은 하원 의석 중 411석을 얻어 12년 만에 정권을 탈환할 것이란 예상이다.
트러스 총리가 당내 기반을 완전히 잃고 총리직에서 축출될 경우 영국 역사상 최단기간 재임한 총리로 남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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