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애초 매출 발생가능성이 낮은 회사와 조건부 계약을 체결한 경우, 계약 상대방의 신의성실에 반하는 행위만으로는 조건 성취가 의제되지 않아 약정금을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A씨가 B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약정금 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법에 환송했다.
앞서 A씨는 지난 2007년 B주식회사가 보유한 지적재산권을 통한 매출이 발생할 때마다 투자금의 5배에 해당하는 배당금을 상환받기로 약정하면서 B주식회사에 1000만원을 투자했다.
그런데 B주식회사의 대표이사 C가 '전자제품을 실제 개발해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다수 유통 대리점주들에게 시제품 등을 보여주면서 제품 선급금 명목으로 돈을 편취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에 A씨는 "설령 투자협정에서 정한 배당금 지급조건이 성취되지 못했더라도 처음부터 위 조건을 성취할 의사가 없었던 피고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매출을 발생시키지 않았으므로 민법 제150조에 따라 조건의 성취가 의제되었다고 봐야한다"며 배당금 1억3000만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1심 재판부는 "원고가 배당금을 지급받기 위해서는 피고 회사가 보유한 지적재산권을 통한 매출이 발생했어야 하는데 피고 회사는 지적재산권을 이용한 매출이 발생했다고 볼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피고 회사는 처음부터 '지적재산권을 통한 매출' 발생이라는 배당금 지급 조건을 달성할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보임에도 원고로부터 투자금을 지급받기 위해 원고를 기망하여 투자협정을 체결했다"며 "민법 제150조 제2항에 따라 조건의 성취가 의제된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원고의 약정금 청구 중 일부를 인용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앞서 본 사실관계 및 기록에 의하면 피고 회사가 이 사건 투자협정에서 정한 '지적재산권 관련 매출의 발생'이라는 이 사건 조건의 성취를 방해한 경우로 보기 어렵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고 주문했다.
대법원은 "여기서 말하는 '조건의 성취를 방해한 때'란 사회통념상 일방 당사자의 방해 행위가 없었더라면 조건이 성취되었을 것으로 볼 수 있음에도 방해 행위로 인해 조건이 성취되지 못한 정도에 이르러야 하고, 방해 행위가 없었더라도 조건의 성취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경우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투자협정은 피고 회사가 보유한 지적재산권을 활용해 전자제품을 개발·판매하려는 사업의 준비단계나 초기 과정에서 체결된 것으로 당시로서는 피고 회사가 제품을 개발·양산할 수 있을지, 나아가 해당 제품이 실제로 판매될 수 있을지 여부를 알 수 없는 등 사업의 성공가능성을 예측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고는 상당한 위험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진행했다"며 "원고로서도 매출 발생이라는 이 사건 조건이 성취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했던 것으로 보이고, 피고 회사의 대표이사가 형사처벌을 받은 점 등을 종합해 보면 피고 회사의 방해 행위가 없었더라도 이 사건 조건의 성취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던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원고의 주장대로 조건 성취가 의제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민법 제150조 제1항에 의한 조건 성취 의제효과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방해 행위의 유무뿐만 아니라 방해 행위가 없었을 경우에도 조건이 성취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지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판시한 최초의 판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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