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새롭게 드러난 객관적 증거가 없음에도 재판부의 직접 조사 없이 원심 판결을 뒤집은 경우 증거재판주의·공판중심주의·직접심리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형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환송했다.
앞서 A씨는 지난 2020년 3월 자신의 집에서 필로폰 약 0.05g을 일회용 주사기에 넣고 생수로 희석해 여자친구 B씨의 팔에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B씨가 직접 필로폰을 투약했을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B씨의 팔에 주사하는 방법으로 필로폰을 투약한 사실은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1심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B씨가 수사기관 및 법정에서 한 진술이 일관성이 없어 그 자체로 믿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본인의 형사책임을 면할 목적으로 허위진술을 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엄격한 증거에 의해야 한다"며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해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B씨가 마약 투약 사실로 교육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점, 사건 당시 B씨는 피고인의 집에 함께 있었고 피고인의 집에서 압수한 일회용 주사기에서 필로폰과 B씨의 DNA가 검출된 점 등을 확인할 수 있다"며 "피고인이 공소사실의 기재와 같이 B씨에게 필로폰을 사용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결국 2심 재판부는 검찰의 항소를 받아들여 A씨에게 징역 4월에 추징금 10만원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1심 판단을 뒤집기 위해서는 1심 판단을 수긍할 수 없는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현저한 사정이 나타나는 경우여야 한다"며 "그런데 원심이 지적한 사정은 모두 1심에서 증거조사를 마친 증거기록에 기초한 것일 뿐, 새롭게 드러난 것이 없어 1심 판단을 뒤집을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고 주문했다.
대법원은 "원심에서 증거로 인정한 수사보고서나 B의 자백 진술서도 진술자의 서명 또는 날인이 없는 이상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추가적인 심리나 증거조사도 없이 공소사실에 대한 객관적 증명력이 있다고 보기에는 피고인의 주장에 일부 석연치 않은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유죄의 의심이 드는 정도에 불과하고 B가 스스로 필로폰을 투약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B에게 필로폰을 주사해 사용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할 만큼 압도적으로 우월한 증명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며 "원심의 판단에는 증거재판주의·공판중심주의·직접심리주의 원칙에 관한 법리를 위반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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