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 미술품 수집가들에게는 가짜 그림이 가장 골칫거리다. 큰맘 먹고 산 작품이 위작으로 판명나면 손해가 막심한 데다 수습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초보 컬렉터들은 진작과 위작을 분별해낼 안목이 없어 더욱 불안하다. 그렇다면 미술품 감정은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까. 위작에 속지 않으려면 무엇에 주의해야 하며, 그림을 사기 전에 꼭 챙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같은 궁금증에 답하는 책이 출간됐다. 바로 '미술품 감정과 위작'(아트북스)이다.
[서울 뉴스핌] 갤러리스트 경력 50년, 감정 경력 40년을 책 '미술품 감정과 위작' 속에 녹여낸 송향선 가람화랑 대표. "위작은 음지에서 만들어져 음지에서 거래된다. 반면에 훌륭한 진품은 결코 음지에서 거래되지 않는다. 당당히 제 대접 받으며 좋은 가격에 주인을 찾아간다"고 강조했다. [사진= 이영란 기자] 2023.02.20 art29@newspim.com |
저자는 한국근현대미술 감정의 최일선에서 40여 년간 활동해온 송향선(76) 가람화랑 대표다. 한국에 첫 미술품 감정기구가 설립된 1982년부터 감정위원으로 활동했던 송 대표는 우리 미술계를 대표하는 감정전문가다. 이화여대·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1974년 화랑계에 입문, 1977년부터 가람화랑을 운영한 '1세대 갤러리스트'인 그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감정에 참여하며 관련 자료들을 꼼꼼히 취합하고, 연구 분석해왔다.
이번 책에서 저자는 풍부한 감정경험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국민화가인 박수근(1914~65), 이중섭(1916~56), 김환기(1913~74) 작품의 감정과정과 위작문제를 다각도로 다뤘다. 특히 송 대표는 국민화가들의 진작과 위작을 비교해가며 대중에게 거의 공개되지 않았던 감정세계를 자세히 소개했다. 또 평소 접하기 힘든 수백 컷의 위작 도판을 진작 도판과 함께 공개해 관심을 모은다. 송 대표를 만나 일반이 꼭 알아야 할 미술품 감정의 이모저모를 상, 하 두차례에 걸쳐 들어봤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김환기의 파리 시대 대표작 중 하나인 '정원'. 캔버스에 유채, 145.5×97cm, 1957. 조선시대 백자에 심취했던 김환기는 작품 속에 도자기를 자주 등장시켰다. 많은 작가들이 백자를 그리지만 김환기만큼 격조있고 단아하게 우리 백자의 미감을 능수능란하게 잘 표현한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그림은 1975년 신세계백화점 화랑에서 당시로선 엄청난 고가인 240만원(호당 3만원,80호)에 한 유명 컬렉터에게 판매됐다. 50평형대 반포아파트 한채 값에 맞먹는 금액이었다. 송 대표는 이 그림 거래를 주도했는데 이후 다른 소장가를 거쳐 지난 2019년 KIAF 국제갤러리 부스에 출품됐다. 한국 작가 그림을 꾸준히 수집하고, 백자 달항아리 등 백자를 각별히 사랑하는 방탄소년단(BTS)의 RM(김남준)이 KIAF에서 이 작품을 오랫동안 보고 갔다고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진=C.환기재단, 이미지 제공=아트북스] 2023.02.20 art29@newspim.com |
미술품 감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보다 철저한 작가및 작품연구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작가 작품에 대해 끝없이 탐구하고, 양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사용하는 재료와 고유한 기법도 조사해 기본 틀을 마련하고, 늘 검토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책상머리에서 연구만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실물을 직접 보고, 분석을 병행해야 비로소 길이 보이고, 실력이 쌓인다. 게다가 3,4년 경험으론 어림도 없으니 감정에는 정말이지 왕도가 없다.
진위 감정에서 기준작이 중요하다는데 왜인가
◀미술품 감정은 해당 작가의 특장이 깃든 기준작을 정하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기준작의 특징을 제대로 알아야 위작을 구별할 수 있다. 작품 감정이 의뢰되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로 감정위원을 꾸리고, 때로 유족이나 제자들도 참여시킨다. 아무리 경륜이 많은 전문가라 하더라도 혼자서 진위를 판별하는 것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의뢰된 작품은 제작시기와 재질, 서명, 소장경위와 출처부터 살피고, 기준작과 비교하면서 내용과 형식을 세밀히 분석한 뒤 모든 것을 종합해 최종적으로 감정결과를 내게 된다. 결코 혼자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김환기의 '정원'을 작은 크기로 베낀 위작. 캔버스에 유채. 40.9x31.7cm. 진작의 요소들을 다 그려넣긴 했으나 선이나 색감이 치졸하고, 백자와 학의 배치도 빡빡하게 이어져 답답하다. 기준작에 대한 철저한 연구 없이, 소재 위주로 베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운 곡선과 미감을 빼어나게 형상화한 김환기 진작의 단아한 조형미와는 거리가 한참 먼 가품이다. 서명의 위치도 어색하다. [이미지 제공=아트북스] 2023.02.20 art29@newspim.com |
감정기관도, 그리고 전문가도 실수를 하지 않나?
◀물론이다. 실수도 하고, 번복도 한다. 급하게 감정을 하다보면 오류가 생긴다. 위작으로 감정했는데 확실한 출처와 소장경위, 증언이 나와 번복한 예도 있었다. 박수근의 1950년 작품 '시장의 사람들'이 그런 경우인데 책에도 1991년 당시의 감정 번복상황을 자세히 서술했다. 문제의 유화는 인물의 비례도 어색하고, 박수근 그림 특유의 오돌도돌한 마티에르도 약해 감정위원들은 위작으로 판정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소장자가 곧바로 재감정을 의뢰했고, 소장경위와 출처, 관련자료를 면밀히 재조사해야 했다. 감정 의뢰작은 박수근과 가깝게 지냈던 건축가 김수근이 1966년 S회장에게 집들이 선물로 전달했던 그림이었다. 김수근은 S회장의 성북동 집을 설계했고, 3년 후 이 주택을 '공간' 잡지에 소개했다. 잡지에 실린 주택 사진에 박수근의 '시장의 사람들'이 현관 옆에 걸려 있었다. 김수근은 이후에도 S회장의 집을 들러 그림이 잘 있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박수근의 작품을 자신이 운영하던 화랑(반도화랑)을 통해 수년간 팔아주고, 박수근이 외국인 미술애호가들에게 보내는 편지도 대신 써주곤 했던 이대원 화백(반도화랑 대표) 또한 "박수근 작품이 맞다"고 인정한바 있다. 어느 누구보다 박수근의 작품을 잘 알고 있고, 작가를 아끼던 전문가의 판단이었던 것. 결국 재감정을 통해 감정위원들은 실수를 인정하고, 작품을 진품으로 판정했다. 성북동으로 소장자를 찾아가 감정이 번복된 경위를 설명하고 정중히 사과했으나 소장자는 굉장히 화를 냈다. 평생 잊지못할 당혹스런 순간이었다. 그러나 실수했을 때 이를 확실히 인정하고, 제대로 바로잡는 것은 감정에 있어 더없이 중요한 수순이다.
미술시장의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을 위해서는 감정전문가와 감정기관의 책임있는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핵심이다. 또 감정 전문인력 양성 등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 위작범의 처벌 강화, 컬렉터들의 인식 제고도 필요하다. 대규모 위작사건이 터질 때마다 '반짝'하고 감정의 중요성을 논하다가도 금방 식어버리는 예를 그간 수없이 봐왔다. 앞으로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미술품 감정의 확고하고도 선진적인 시스템이 잘 구축되었으면 한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김환기의 진작 '정원'의 상단부만 도용한 가짜 그림. 캔버스에 유채, 37.8×45.4cm. 색감과 형태, 구성 모두 김환기의 진품과는 거리가 멀다. 오른쪽의 학은 머리만 잘라 그려, 차라리 없는 게 나았을 정도다. [이미지 제공=아트북스] 2023.02.20 art29@newspim.com |
미술품 감정에 뛰어들었던 초기 상황은 어땠나?
◀1982년부터 감정을 시작했는데 당시 우리 경제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미술품 거래가 활발해지고 가격도 뛰자 위작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한국화랑협회는 고객들이 안심하고 미술품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동서양화를 중심으로 감정업무를 시작했다. 그렇게 근현대미술 감정 1세대가 탄생했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서명은 작품의 진위 판명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송향선은 김환기 진작과 위작의 서명을 상세히 비교 설명했다. 상단 3개는 진작의 서명이고, 아래 2개는 위작의 서명이다. 책 '미술품 감정과 위작' 중 p.342. [사진 제공= 아트북스] 2023.02.20 art29@newspim.com |
감정연구소와 감정평가원을 이끌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크고 작은 사건이 많았다. 2005년 이중섭의 '물고기와 아이들' 위작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경매회사와 유족, 소장가를 상대로 힘겨운 법정 공방까지 벌였기 때문이다. 감정전문가들이 고소를 당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결국 법원이 감정위원들의 위작 판단을 인정하면서 매듭이 지어졌다. 2007년에는 박수근의 '빨래터' 사건도 있었다 역시 치열한 공방이 거듭됐고, 과학적 분석을 의뢰하러 일본까지 다녀와야 했다. 1960년대 한국에 머물다가 박수근 작품을 소장하게 된 미국인 소장자가 증언하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내한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진품으로 판정이 났다.
최고 블루칩 작가인 이우환도 위작 논란이 터졌다
◀2016년의 일이다. 전문사기단이 위조범을 기용해 6개월여 맹훈련을 시켜가며 가짜 이우환 그림을 그리게 했다. 조직적인 사기단이었는데 위조범의 처음 그림은 엉성했다. 붓질이 서툴러서 판별하기 쉬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전문가가 봐도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솜씨가 일취월장했다. 검경의 수사로 전모가 드러났고, 언론에도 대서특필됐다. 최소 2개의 조직이 그려낸 당시의 가짜 그림은 대략 600점 정도로 추산된다. 일부는 검찰에 의해 수거됐으나 아직도 상당수 작품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서울 뉴스핌] 위조된 감정서가 첨부돼 이우환 작품으로 경매에 출품됐던 '점으로부터 No.780217'. 4억9천만원에 낙찰된 이 그림을 경찰은 위작으로 판정하고, 압수했다. |
알아두면 좋은 '진위 감정의 핵심'은?
◀첫째, 미술품의 진위 판정에 개인적인 흥미나 억측은 금물이다. 진품은 진품으로써 법칙이 있고, 위조품은 가짜로써 법칙이 있기 마련이다. 도록에 실렸다고 해서 무조건 진품이라고 여기는 것 안이한 생각이다. 도록을 보고 베낀 위작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성이 없는, 소설처럼 그럴싸한 소장 스토리'도 많이 나도니 일단 경계해야 한다. 오염된 정보는 작품을 감정할 때 방해가 될 여지가 크다.
둘째, 진품과 함께 가능하면 다양한 위작을 자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일반인이 가짜 그림을 볼 기회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위조범들은 바로 이 점을 노린다. 이번 책에 위작을 가능한 많이 싣고자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미술품 감정을 책 한권으로 마스터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다.
마지막으로 진위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음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미술품은 진품이 보증되어야만 진정한 '작품'이 되는 법이다. 여기에 더해 정확한 시장가치 감정, 즉 가치 판단이 병행되어야 한다.
책에서 위작을 암에 비유했다.
◀맞다. 위작은 암이다. 진품인 줄 알고 거래한 사람에게는 경제적 손실을 끼치고 미술시장엔 혼란을 야기한다. 작가의 명예도 실추된다. 때문에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사회적 악이다. 진작을 분별하려면 위작을 식별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고, 공신력있는 전문 감정기구의 판단이 필요하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40여 년간 감정전문가로 활동한 송향선 가람화랑 대표가 집필한 '미술품 감정과 위작'. 진위 감정의 실제 사례를 다양하게 제시하고, 진작 도판과 위작 도판을 함께 소개해 컬렉터들의 안목을 길러준다. [사진= 아트북스] 2023.02.20 art29@newspim.com |
미술품 감정을 독학으로 터득 할 순 없나?
◀불가능하다. 혼자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한번 잘못 알고 틀린 신념을 갖게 되면 평생 인식의 오류를 갖게 된다. 따라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 작가연구 등 구체적인 경험을 축적하면서 지속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40년 전 감정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자면
◀초창기 가장 아쉬웠던 것은 전문적인 화집이나 도록의 부재였다. 감정 대상 작품과 관련된 기본 데이터나 지침서가 전무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지금은 사정이 크게 바뀌었다. 많은 미술사가의 연구와 작가들의 전시도록, 영상 등이 풍부해졌고, 그동안 쌓인 데이터와 미술관의 아카이브, 카탈로그 레조네 등 참고자료들이 다양하게 구비돼 있다. 진위 감정과 가격 감정 데이터도 잘 정리돼 있어 이를 바탕으로 감정학의 토대를 만들고, 전문가를 꾸준히 육성하면 감정시스템이 잘 확립될 것이다.
책을 펴내면서 소회도 많았을텐데
◀40년간의 시간을 회고하다 보니 '고진감래'라는 고사성어가 떠올랐다. 쉬웠던 날 보다 어려웠던 날이 더 많았다. 미술품 감정의 불모지나 다름 없던 미술시장에서 수만 점 이상을 감정하면서 주위의 이해부족으로 난감했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대놓고 협박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모든 감정위원들이 헌신해왔다. 화랑협회 역대 회장님 중 감정업무에 가장 큰 관심을 보여준 고 김창실 회장(선화랑 대표)과 한화랑 대표였던 고 한용구씨, 든든한 바위같았던 미술평론가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가장 기억 난다. 우리 근·현대 미술품 감정이 정리되고, 이처럼 체계를 갖게 된 것은 온갖 난관을 무릅쓰고 밤낮으로 애써온 감정인들의 노력 덕분이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이중섭의 황소 진작(왼쪽)과 위작 2점을 저자는 도판과 해설을 통해 자세히 비교하고 있다. '미술품 감정과 위작' P.196-197. [사진= 아트북스] 2023.02.20 art29@newspim.com |
자녀에게 감정인의 길을 권할 것인가?
◀아니다. 내 자식이 한다면 말리고 싶다. 감정만으론 생계유지가 어렵기도 하고, 매사를 비판적으로 접근하게 돼 삶이 피곤해진다. 진위를 놓고 긴장하다 보니 자꾸 따지는 버릇이 생겼다.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 계획은
◀그간 감정업무를 하며 축적한 1만5000건의 자료를 분류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자료집을 낼 예정인데 70%정도 진척이 됐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자료를 모두 넘겨놓은 상태다. 한국근현대미술 감정에 소중한 자료로 활용되길 바란다. 한동안 대학원 등에서 강의도 했는데 이제 '따지는 일'에서 벗어나 그림 그리기 등 '부드러운 일'을 하려고 한다. 내 원래 전공이 '회화' 아닌가. 하하. <끝>
◀송향선 대표는?=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이화여중과 서울예고를 거쳐 이화여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4년 화랑계에 발을 들여놓아 1977년 가람화랑을 창립해 현재까지 대표로 있다. (사)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및 감정위원장을 4회 역임했고(1983~2001), (사)한국미술품감정협회 감정위원장(2002~2019), (주)한국미술품평가원 감정위원장을 역임했다. 2005년 명지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서 감정학을 전공했고, 명지대와 동국대에서 한국미술품감정학을 강의했다. 주요 논문으로 '오원 장승업' '이중섭 회화의 감정사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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