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산업계 곳곳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 경제의 큰 축인 반도체를 비롯해, 성장기에 진입한 배터리, 부활의 날갯짓을 펴고 있는 조선, 미래 핵심산업으로 꼽히는 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업계 인력난 현황과 해법을 살펴본다.
[서울=뉴스핌] 김지나 기자 = "마이크론이 (인재를)똑똑하게 만들어 놓으면 인텔이 데려가고, 마이크론은 빈자리에 삼성과 SK하이닉스 사람을 뽑아갑니다. 현재 예상으론 2031년 학·석·박사 기준으로 총 5만4000명 수준의 인력 부족이 예상됩니다." 최근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한 학술심포지엄에서 반도체 업계 인력 부족현상에 우려를 나타냈다.
미-중간 패권 전쟁, 챗GPT, 미래산업 등과 맞물려 국내 반도체 산업은 국가 핵심산업으로 부상했지만, 정작 반도체 산업 전문인력이 부족해 기업들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한 정부의 전방위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교육 현장에서 반도체 전공은 학생들의 관심에서 밀려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인력난 해소를 위해선 긴 호흡으로 학생들의 관심을 반도체 산업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는 한편,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한 충분한 예산 확보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 반도체 인력양성? 반도체 전공, 여전히 인기없어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인 삼성전자 평택 2라인 전경 [사진=삼성전자 제공] |
6일 업계에 따르면 2023학년도 정시모집에서 주요 대학 중 대기업 취업연계가 가능한 반도체학과 등록 포기율이 높게 나타났다.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10명 모집에 13명의 추가 합격자가 나왔다. 한양대 반도체공학과는 16명 모집에 44명의 추가합격자가 나오며 추가합격자가 모집인원의 약 3배에 달했다. 서강대 시스템공학과도 10명 정원에 8명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정부는 10년간 약 15만명의 반도체 인재를 키우는 내용의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 방안'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반도체 관련 학과(반도체·전자·신소재·재료·기계공학과 등) 정원을 5700명 늘려 2031년까지 반도체 인력 4만5000명을 배출하고, 산업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재정지원 사업을 통해 직업계고와 학·석·박사급 인력 10만5000명을 추가 배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반도체 전공에 대한 관심도는 낮은 상황이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공계에서 반도체 학과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높았다. 하지만 이후 의대 쏠림 현상은 이어진 한편 페이스북, 유튜브 등의 부상으로 컴퓨터공학 전공 등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에 반해 반도체 전공은 학생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이 같은 현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학과를 꾸리기 위해선 실험장비 등 많은 것들이 갖춰져야 하는데, 2010년대 전후만 해도 대학에서 반도체 실무를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고 대학도 반도체 교육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지 못했다"면서 "비메모리 설계 인력 등 반도체 인력 씨앗이 그 때 뿌려졌어야 하는데, 그 필요성을 느끼는 시점이 늦었고 결국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첨단반도체에 우수인력 가장 중요"...충분한 예산 확보돼야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학년도 정시 대학입학정보박람회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입학 상담을 받고있다. 2022.12.15 pangbin@newspim.com |
문제는 지금 직면한 반도체 산업의 인력난은 단순히 반도체 전문인력을 뽑지 못 하는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기술 경쟁력과도 직결된다는 점이다. 현재 반도체 산업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달한다.
여기에 반도체 기술은 미국과 중국간 패권 전쟁에서 핵심으로 부상했다. 중국은 반도체 기술 육성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 있는 한편 미국은 삼성전자,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 자국내 공급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풀고 있다.
첨단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기업 간 경쟁도 치열해 지고 있는 가운데 아직까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기업들이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이 주도권을 언제 경쟁사에 뺏길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에 기술경쟁력을 가져가기 위해선 반도체 전문 인력이 꾸준하게 수혈돼야 한다.
김기남 SAIT(옛 삼성전자종합기술원) 회장 역시 최근 한 심포지엄에서 챗GPT 같은 혁신 AI 기술이 광풍을 일으키고 있는 현 시점에 가장 중요한 과제로 우수 인력 양성을 목표로 내세우며 "첨단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우수한 인력"이라며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기업이 건실하게 운영되려면 단단한 (인력)생태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삼성 역시 인력 양성을 강화하기 위해 학과도 만들고 많은 노력을 들였지만 잘 되지 않았다"면서 "기업 뿐만 아니라 국가와 학계, 업계가 함께 노력해 선순환 사이클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을 맡고 있는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반도체에는 전자·물리학·재료 등 다양한 학문이 들어가는데, 우리라나 대학 시스템에는 이것을 같이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안 갖춰져 있다"고 말하는 한편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선 결국 충분한 예산이 동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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