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경선 행복한직장생활연구소장 = 절박할수록 돌아갈 수 있는 있는 지름길이나 꼼수는 없다. 우리 사회 일터 고수들에게는 그들만의 성공 노하우가 있다.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일을 대하는지, 그 일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까지 지난했던 과정과 그늘들, 화려함 뒤에 가려진 노력과 자세를 곱씹어 보면서 성공의 실마리를 찾아볼 일이다. 고용노동부 관료를 거쳐 여성가족부 차관까지 일자리 문제를 전문적으로 고민하고 일터의 정점까지 올랐던 김경선 행복한직장생활연구소장이 각 전문 분야의 고수들을 만나 그들만의 경험과 비밀스러운 성공 레시피를 듣는다.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의 최초 여성 파트너이자 임원인 이인경 부사장. 2021년 미국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 파워 비즈니스 우먼 20인'에도 선정된 바 있는 그의 일터를 찾아가 봤다. 아직까지 여성들의 진출이 제한돼 있는 금융업계, 그것도 가장 경쟁이 심한 사모펀드(PE) 업계에서 가장 최고위 임원인 파트너 자리까지 승진한 인물이다. 자본주의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금융업, 거기에서도 가장 고수들이 모인다는 사모펀드 업계에서 성과를 인정받고 있는 그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얘기는"도전하라", "일단 부딪쳐 보라"였다. 그리고 그 치열한 경쟁의 일터에서 어떻게 두 아들의 엄마로 살아남아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었는가란 질문에는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라면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인경 MBK부사장. |
◆ "내 일의 핵심 가치는 기업을 밸류업하는 것"
- MBK의 CFO라는 직책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 일단 사모펀드 업계에 대한 이해를 좀 해야 하는데, 2004년 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사모펀드 관련 법이 제정되면서 1세대 사모펀드들이 등장했어요. MBK도 그중 하나였고 사모펀드는 기업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매입하는 경영참여형 M&A를 주목적으로 합니다. 이러한 펀드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투자자를 모집해야 하고, 그렇게 조성된 펀드를 가지고 투자할 투자처를 결정해야 합니다. MBK는 연기금 등 주로 기관투자자와 전문투자가를 대상으로 투자자를 모집합니다. 이렇게 참여한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투자 내용 등을 설명하고 소통하는 투자자 관리(LP relations) 업무를 제가 총괄하고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펀드레이징할 때 이러한 기관투자자들을 직접 만나 약정을 받고, 정관 합의, 사후 관리 등 업무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성된 펀드의 재무적 성과와 리스크를 관리하는 업무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MBK에 입사한 이래 7개 펀드가 조성이 됐고 펀드 규모가 수억달러 규모이기 때문에 처리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죠. 1년에 한 번 11월경 투자자 총회를 개최하는데 보고되는 자료들이 방대하기 때문에 그때쯤이 가장 바쁜 시기입니다.
그리고 2020년 파트너로 승진하면서부터 MBK의 투자심의위원회에 참여합니다. 한마디로 투자에 관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회의인데 거의 한 달에 한 번 가까이 열립니다. 회사의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준하는 역할을 하고 그 결정에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준비와 고민도 필요합니다.
- 본인 일의 핵심 가치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 경영참여형 M&A를 주도하는 사모펀드는 기업의 가치를 최대치로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기업의 경영 시스템 중 비효율적 요소를 제거하고 국제 기준에 맞춰 효율적인 운영이 되도록 하죠. 간혹 사모펀드 하면 '먹튀'라는 용어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업의 가치가 높아지면 기업이 성장하고 그러면 고용도 오히려 늘어납니다. MBK가 인수하면서 근로자들을 인위적으로 구조조정한 경우가 없습니다. 고용을 늘려 왔습니다. 회사를 인수하고 경영하는 일을 주로 하면서 글로벌하게 해당 업종의 best practice들을 전파하고 최근 화두가 된 ESG 경영도 강화하게 됩니다. 특히 국내 대기업 계열사를 인수할 경우 거버넌스 측면에서 훨씬 개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에 대한 초기 투자, 시스템 개선 계획의 설계, 실행, 이후 매각 등 전 과정에서 국제적 기준으로 효율성을 제고하고 그 성과는 투자자뿐 아니라 해당 회사의 근로자, 나아가 소비자들도 누리게 된다고 봅니다. 대한민국 기업들을 밸류업하고 결과적으로 한국 경제를 밸류업하게 되는 거죠.
- 업무량이 상당한 것 같습니다. 사모펀드 업계는 남성이 대부분이라 여성이 뛰어들기 어렵지 않나 생각되는데 여성의 장점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는지.
▲ 사모펀드 업계도 여성들 참여가 더 확대돼야 합니다. 지금까지 대규모 공채 방식이 아닌 추천 위주의 소규모 경력직 채용 방식이다 보니 여성들에게 기회가 덜 제공됐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투자심의위원회에 참여하다 보니 의사 결정에 있어서 다양성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투자 결정이나 리스크 관리 등 동일한 관점보다는 다양한 관점에서 보아야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 같아요. 특히 금융위기 이후 여성의 리스크 관리 능력이 부각됐고, 투자 결정에 있어서도 균형감이 중요해지면서 여성 인력들에 대한 요구가 많아졌어요. 소비재나 서비스업, 헬스케어 등 여성이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산업이 성장해 투자처가 다양해진 영향도 있습니다. 케이시 마츠이 전 골드만삭스 일본 부대표가 'Womenomics'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것처럼 시장 흐름을 이해하는 데 여성의 시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사모펀드 업계에서도 여성 인력에 대한 요구도 높아질 것입니다.
이인경 부사장과 김경선 소장이 인터뷰를 마치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 [행복한직장생활연구소 제공] |
◆ 커리어 시작은 일단 부딪쳐 보기...작은 인연이 큰 결실로
- 사모펀드 업계에서 부사장의 현재 위치나 역할을 볼때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데 일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랬는지.
▲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취업한 직장은 외국계 보험회사였습니다. 여기는 제가 무턱대고 일하고 싶다고 인사담당자에게 이력서를 보낸 곳이었어요. 제가 대학을 졸업한 1990년 초만 해도 대기업이나 금융회사 취업이 쉬운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만 해도 은행 등 국내 금융회사는 여성에게 유니폼을 입게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유니폼이 용납이 되지 않아 외국계 금융회사 취업을 희망하게 됐죠. 무턱대고 외국계 은행이나 투자기관에 입사원서를 냈습니다. 그 당시 외국계 회사 사무실들이 밀집해 있는 교보문고빌딩에 와서 직접 인사부서를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보안이 철저하지 않아 "인사부서가 어딘가요?" 하고 찾아가서, "취업하고 싶어서 원서 내러 왔다"고 하면 "거기 두고 가세요"라고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무작정 부딪친 거죠.
그러던 중 라이너생명보험이라는 보험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마침 그 회사와 같은 건물에 대형 회계법인이 있어서 회계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보험회사는 오래 다니지 않았고 결혼과 출산으로 회사를 그만둔 후 경영대학원을 새로 들어갔어요. CPA를 준비하려면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서였죠. 출산한 이후 CPA를 합격했고 이후 안진회계법인에서 근무했는데 국내 대기업보다는 작은 해외법인들을 주로 담당했어요. 여자이고 영어 실력이 있으니 좀 편하고 영어가 필요한 일을 맡겼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일 욕심이 많았던 때라 그 당시에는 좀 불만스러운 면이 있었으나 오히려 나중에는 커리어에 더 큰 도움이 됐죠.
이인경 부사장. |
- 이 분야에 진출하고 싶다면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할까요.
▲ 앞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사모펀드 업계에서는 완전 신입사원은 거의 뽑지 않습니다. 컨설팅 회사나 투자은행 등에서 경력을 쌓은 경력자를 리크루팅합니다. 회계법인에서 오는 경우도 있고요. 컨설팅 회사 경험이 있다면 다양한 회사에 대한 전략업무를 경험한 것이 큰 장점이 되고, 발표 역량도 뛰어나다면 투자 유치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처럼 재무팀으로 들어올 때는 회계법인에서의 세무부서나 감사부서 경력이 도움이 됩니다. 재무정보를 읽는 일에 익숙해야 하고 국제조세나 상법, 자본시장법 등 금융 관련 법규에 대한 지식도 큰 도움이 됩니다.
- MZ세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처음부터 중요하고 큰 일만 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저 같은 경우도 돌아돌아 여기까지 왔지만 당시에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나중에는 귀한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회계법인에서 중요한 대기업보다 작은 외국계 업무를 했던 것이 오히려 지금 더 도움이 된다는 말씀 드린 바와 같이 그때그때 최선을 다한 것이 나중에 더 큰 결과로 찾아오게 되는 것 같아요. 20대에 자신의 인생 전체를 설계하기는 어렵습니다.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서 작은 목표를 하나씩 이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일하면서 아이 키우기' 힘들지만...커리어 포기 말라
- 특별히 여성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 일-가정 양립이 여성만의 고민은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하지만 많은 여성 후배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어요. "절대 포기하지 말고 보릿고개 넘듯이 힘든 시기를 버텨 내라." 물론 아직 육아 부담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지켜 나가는 것이 쉽지 않은 건 맞습니다. 하지만 일이나 육아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아이도 키워 보면 집중적인 케어가 필요한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아요. 아이의 공부까지 부모가 대신 해줄 수는 없기에 자신의 커리어를 지키고 싶다면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이인경 부사장 약력 △1991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95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수료 △1996년 CPA 합격, 안진회계법인 △1999년 모건스탠리 MS Properties CFO △2006년 MBK CFO △2020년 MBK 부사장, 파트너 승진△2021년 아시아 파워 비즈니스 우먼 20인에 선정
<에필로그>
김경선 소장. |
같은 87학번인 이인경 부대표를 처음 만난 건 대학 시절이었다. 공통의 친구를 가진 사이였기에 자연스럽게 알고 지냈지만 가는 길이 서로 달라서 대학을 졸업하고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최근 우연히 소식을 듣게 됐고, 필자에게는 다소 생소했던 사모펀드 업계라 그 일의 본질은 무엇인지,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듣고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30년이 지난 후 만난 그는 여학생 중 학력고사 전국 2위라는 놀라운 성적이 말해 주듯 대학 시절과 마찬가지로 명석하고 논리적이었다. 하지만 훨씬 더 차분하고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사람으로서 서로 통하는 점이 많아서 반가웠다. 특히 아이 둘을 키우면서 커리어를 이어 왔다는 점에서 서로를 칭찬해 주고 싶었다. 금융권 M&A 분야는 화려해 보이지만 경쟁이 치열하고 업무 강도도 꽤나 높은 편이라 여기에 진출하고 싶다면 실력과 역량을 쌓으면서 차분히 접근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거창한 계획을 세운 건 아니지만 도전과 작은 성취를 쌓아 가면서 지금 자리에 우뚝 선 이인경 부사장, 앞으로도 기업과 대한민국 경제를 밸류업하는 데 역할을 해나가길 기대한다.
*김경선 행복한직장생활연구소장은 1991년 행정고시를 합격하고 공직에 입문했다. 30년 넘는 공직생활 대부분을 고용노동부에서 보냈고, 마지막으로 여성가족부 차관을 역임했다. 은퇴 후 공직생활에서의 경험과 역량을 MZ세대 직장인들과 공유하고자 행복한직장생활연구소를 만들어 온라인으로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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