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과거 비전향 장기수 장의균 씨에게 대남공작 지시를 내린 간첩이라며,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등이 양관수 일본 오사카 경제법과대학 교수에게 내린 지명수배 조치는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지명수배 조치를 포함한 수사기관의 행위 등에 대해 위법 및 과거사정리법 적용 여부는 수사기관의 일련의 행위 내용과 성격 등 실질적인 영향 등을 고려해 전체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양 교수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안기부 및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수사관들은 일본 유학생 시절 조총련 측과 접촉해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1987년 7월 장씨를 구속영장 없이 연행해 조사했다. 장씨는 같은 해 8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안기부 및 보안사는 같은 해 9월 장씨가 조총련 대남공작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양 교수의 지령을 받아 국내 정국추세 및 반정부 운동권의 동향 등을 수집했으며, 야당정치 지도자 등과 접촉을 시도한 간첩이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이같은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안기부는 1993년 11월께 양 교수에 대해 지명수배를 내렸고, 1998년 5월 양 교수가 입국하자 그를 불법구금해 조사했다. 서울지방검찰청(현 서울중앙지검)은 같은 해 12월 양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했다.
이후 장씨는 2014년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해 2017년 12월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으며, 양 교수는 2018년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양 교수는 1·2심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으나 그에 대한 당시 안기부의 지명수배 부분에 대해선 위법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2심 재판부는 "양 교수에 대한 지명수배는 소재불명된 피의자의 소재 발견을 위한 수사 방편의 하나로서 수사기관 내부의 단순한 공조 내지 의사 연락에 불과하다"며 "지명수배 조치 자체가 양 교수에 대해 어떠한 직접 효력을 가지는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불법구금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양 교수가 자수 형식으로 귀국해 조사받으면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자백 취지의 진술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과거사정리법상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조작의혹사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정부의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대법원의 당시 지명수배 조치도 위법하다고 보고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수사발표나 배포된 보도자료의 내용에 비춰 양 교수에 대한 지명수배 조치가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고, 그는 검거를 우려해 10여년간 국내에 입국하지 못했다"며 "양 교수가 입국하자 수사기관이 바로 임의동행한 것도 지명수배로 인한 것으로, 지명수배 조치가 불법구금을 용이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안기부가 불법구금, 가혹행위 등 위법한 방법으로 수집한 증거에 기초해 이뤄진 수사발표, 보도자료 배포, 지명수배는 모두 양 교수에 대한 수사절차의 일환"이라며 "전체적으로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또 재판부는 "양 교수에 대한 수사발표 등은 모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조작의혹사건을 구성하는 일부분이고, 그중 일부 행위만을 떼어내어 과거사정리법의 적용을 부정하는 것은 상당하지 않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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