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태훈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일방 처리로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즉각 재가했다. 이로써 윤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양곡관리법에 이어 두 번째로 거부권을 재가하게 됐다.
대통령실은 16일 오후 공지를 통해 윤 대통령이 낮 12시 10분경 간호법 제의요구안을 재가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20회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스핌] 김태훈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2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제4차 수출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2023.02.23 taehun02@newspim.com |
윤 대통령은 "국민 건강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며 "정치 외교도, 경제 산업 정책도 국민 건강 앞에서는 모두 후순위"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 건강은 다양한 의료 전문 직역의 협업에 의해서 제대로 지킬 수 있는 것"이라며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의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은 생중계 됐다. 대통령실 관계자에 따르면 간호법 개정안의 경우 의료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기 때문에 모두발언 생중계를 통해 간호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직접 설명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재가는 예상된 수순이었다. 이미 보건복지부와 국민의힘 등 당정은 지난 14일 고위당정협의회를 통해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은 양곡법 거부권 행사 때와 마찬가지로 국무회의가 끝난 직후 곧바로 재가헀다.
이날 심의 의결된 간호법 재의요구안은 주무부처 장관인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한덕수 국무총리의 서명에 이어 대통령의 서명으로 재가된다.
윤 대통령은 간호법 거부권 행사에 대해 깊이 고심했다고 한다. 취임 후 첫 번째로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법의 경우 농업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규정했으나, 간호법의 경우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충돌하고 있는 법안이라는 점에서다.
간호법 개정안의 골자는 간호사의 역할과 업무를 기존 의료법에서 분리해 새로 규정하고 간호사의 처우를 향상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의료 영역에서 간호를 별도로 구분하는 시도가 의사, 간호조무사 등 다른 직역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었다.
특히 간호법 1조의 '모든 국민이 의료 기관과 지역 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는다'는 문구의 경우 간호사가 의사 없이도 의료 서비스를 위한 '개업'이 가능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아 단식과 총파업 등 갈등이 거세게 일었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김민석 정책위의장과 송기헌 원내수석부대표를 포함한 남인순, 전혜숙, 정춘숙, 강선우, 고영인, 강훈식, 이병훈, 최종윤, 서영석, 윤준병 의원 등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간호법 대통령 거부권 결정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거부권을 행사한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의 간호법 제정 촉구 집회(왼쪽)와 간호법저지 13개 단체 보건복지의료연대의 간호법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2023.05.16 pangbin@newspim.com |
한편 윤 대통령은 지난달 4일 2016년 5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상임위원회의 상시 청문회 개최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이후 7년 만에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했다. 또 42일 만에 간호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이번이 끝이 아닐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정부와 여당이 반대하고 있는 노란봉투법과 방송법 등의 강행 처리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수사 등 민주당의 분위기가 당 안팎으로 뒤숭숭한 가운데,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 정국이 더 얼어붙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간호법 개정안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따라 국회로 다시 넘어가 재표결에 부쳐진다. 재의결은 과반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요건으로 한다. 재의결시 해당 법안은 법률로 확정되고 정부도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재적 의원(299명) 중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115명)이 3분의 1을 넘고, 국민의힘 측에서는 간호법 개정안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재의결 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다. 만약 재의결되지 않으면 해당 법안은 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taehun0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