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
주요뉴스 산업

"가격 인하 검토" 라면업계...원가 구조 보니 '속앓이'

기사등록 : 2023-06-19 15:10

※ 뉴스 공유하기

URL 복사완료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이제 좀 나아지나 했는데...정부 압박에 한숨
"제분업체도 밀가루값 안내렸는데...왜 우리만"
정부 압박 본격...2010년 라면값 인하 사태 재현되나

[서울=뉴스핌] 전미옥 기자 =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라면값 인하' 발언으로 라면업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표면적으론 라면 3사 모두 '검토하겠다'고 화답했지만 내부에서는 당장 가격 인하는 쉽지 않다며 울상을 지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은 라면 가격 인하를 포함해 프로모션 등 소비자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놓고 검토에 돌입했다. 전날 KBS 일요진단에 출연한 추 부총리의 '라면값 인하' 발언 때문이다. 방송에서 추 부총리는 "지난해 9~10월 (라면 가격을)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으로 내렸다"며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정부의 가격 인하압박에 라면업체들은 곧바로 가격 인하 검토에 들어갔다. 농심은 "라면 가격에 대한 부담 완화책을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고 오뚜기는 "아직 결정된 바는 없지만 다방면으로 검토 중이다"라는 입장이다. 삼양식품도 "국민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여러모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황준선 기자 = 13일 오전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의 모습. 2022.09.13 hwang@newspim.com

다만 가격 인하 경고장을 받아든 라면업계의 심경은 복잡하다. 국제 밀 가격 시세가 감소한 것이 맞지만 당장 제조비 절감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어서다.

관련해 라면의 원가 구조에 대한 업계 추정치는 밀가루 20%, 팜유 20%, 마케팅·물류·판촉활동비 20~25%, 야채스프 등 기타 재료 10~15%, 포장재 20~25% 수준이다. 라면 원가의 40%가량을 차지하는 밀가루와 팜유 국제 시세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여파로 치솟았다가 올해 들어 가격이 일부 안정화됐다. 실제 소맥분 국제 시세는 지난해 9월 대비 50%가량 줄었고 팜유 가격도 20~30%가량 낮아졌다.

그러나 라면업체들은 제분업체에 지불하는 밀가루 납품가는 지난해와 동일한 수준이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국제 시세가 낮아진 것은 맞지만 제조비 감축으로 이어지려면 최소 6개월 이상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전분, 스프 등 기타 재료와 물류비, 인건비, 포장비 등 원가부담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피력했다.

라면업계 한 관계자는 "제분업체의 밀가루 공급가 작년과 동일하고 밀가루, 팜유 외에도 다른 원재료 가격이 많이 올랐다"며 "일례로 면의 탄력을 위해 사용하는 전분 가격은 작년 대비 70% 올랐고 설탕 가격도 최근 들어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1분기 실적이 잘 나온 이유는 어려웠던 작년 실적의 기저효과"라며 "밀가루를 제외한 인건비, 물류비, 포장비 등 원재료 부담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소비침체 등으로 2분기 분위기도 좋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앞서 라면 3사는 지난해 9월부터 연달아 가격인상을 단행한 바 있다. 농심은 지난해 9월 라면 출고가를 평균 11.3% 인상했고 오뚜기, 팔도는 제품 가격을 각각 11%, 9.8% 올렸다. 삼양식품도 지난해 11월 가격을 평균 9.7% 인상했다. 업체들의 가격 인상으로 지난달 라면의 소비자 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13.1%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글로벌 금융이기 당시인 2009년 2월(14.3%)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가격을 인상한 라면업체들은 올해 1분기 나란히 호실적을 냈다. 농심의 올해 1분기 국내 시장 매출액은 628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오뚜기 면류 제품 매출은 295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3.5% 늘었고 삼양식품의 면스낵사업부 매출도 16.1% 상승하는 등 가격인상 효과를 봤다. 인상 효과가 나타나자마자 가격 인하 압박을 마주한 셈이다. 

라면업계의 가격 인하 조치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한 차례 있었다. 당시 밀가루 가격 하락과 강력한 물가 안정 정책과 맞물려 업체들이 일제히 가격을 내린 사례다. 당시 농심과 오뚜기는 각각 4.5%, 6.7% 내렸고 삼양식품도 6.7% 가량 가격을 인하했다. 이듬해 농심과 삼양식품은 다시 제품가격 인상을 결정하기도 했다.

정부 압박으로 이뤄진 2010년 가격인하 사태가 재현되자 라면업체들은 당혹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표면적으로는 가격 인하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인하로 이뤄지기는 어렵다는 것이 업계 공통된 인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2010년 이후 13년 간 인건비를 비롯해 각종 비용이 크게 올랐음에도 라면값은 1000원 수준이다"라며 "검토는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가격을 내릴만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romeok@newspim.com

CES 2025 참관단 모집
<저작권자© 글로벌리더의 지름길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Newspim),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