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신영 기자 = 묻지마 흉기난동이 잇따르자 법무부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사실상 사형 폐지국과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해당 수형자들을 관리할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봤다. 일각에서는 재소자 고령화와 맞물려 영구 수용에 드는 사회적 비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 4일 "흉악범죄 엄정대응을 위해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형법에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같이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사형제와 병존해 시행하는 입법례 등을 참조하겠다는 계획이다. 헌법재판소가 사형제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지만 향후 존폐 결정과 무관하게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성남=뉴스핌] 이형석 기자 = '서현역 흉기 난동' 피의자 최 모(22)씨가 5일 오후 경기 수정구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최 모씨는 지난 3일 오후 5시59분쯤 차량으로 서현역 앞 인도를 돌진한 뒤, 인근 AK플라자에서 흉기를 휘둘러 14명이 다쳤다. 2023.08.05 leehs@newspim.com |
◆ 잇따른 흉기난동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 공론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을 계기로 공론화됐다. 지난달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한 장관은 "취지에 공감한다"며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괴물의 경우 영원히 격리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헌법재판소의 사형제 위헌 여부 결정이 얼마 남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그 결정 이후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분당 서현역에서 흉기난동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엄정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하자 헌재의 결정과 상관 없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현행법은 무기징역 수형자가 복역한지 20년이 지나면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된다. 반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도입되면 수형자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구금된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사형제 폐지의 대안으로 거론돼왔다.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을 중단하면서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EU(유럽연합)와 앰네스티 인터내셔녈(AI) 등 국제인권단체들은 한국 정부를 향해 사형제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사형폐지국가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등 종교단체가 생명권 존중을 이유로 사형제 폐지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헌재는 2010년에 이어 세 번째 사형제 위헌 심판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최근 흉기난동처럼 흉악범죄가 벌어질 때마다 사형을 다시 집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흉악범들을 엄벌하고 법 기강을 확립할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조 의원은 지난 법사위 회의에서 사형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가석방된 범죄자가 저지를 보복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두려움이 크다고 강조했다.
실제 법무부가 발표한 '2023 교정통계연보'의 최근 3년간 성인수 가석방 허가자 현황을 보면 2020년 7876명, 2021년 9354명, 2022년 1만281명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한 장관은 "사형제는 철학적인 고민이 필요할뿐만 아니라 외교 문제와도 관련돼 있다"며 "사형을 집행하게 되면 EU와의 외교관계가 심각하게 단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해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이 사건'의 결심 공판이 열린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살인죄 처벌 촉구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2021.04.14 mironj19@newspim.com |
◆ 법조계 "사형제 부활 어려워, 무기 수형자 관리 체계 필요"
법조계는 현시점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사형을 대체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형제에 대해 엄격한 분위기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26년간 사형 집행이 중단되면서 법원에서도 사형을 선고하지 않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수형자가 20년 살고 가석방되면 피해자들은 또 다른 범죄에 대한 큰 불안감을 느낀다"며 "현행 형법이 유지된다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사람이 치외법권에 놓이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잇따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할 경우 수형자들이 정상적인 수형생활을 이어갈 만한 제도와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교도소 밖을 나갈 수 없다는 전제 탓에 교도관들이 오히려 수형자들을 관리하기 어려워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다.
안성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 사형제를 부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지금과 마찬가지로 EU와의 교류 문제 등으로 제약이 많았다"며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다만 "수형자들을 평생 데리고 있으면서 밥만 먹일 순 없다"며 "교육과 여러 활동을 통해 그들이 생존해 있을 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동기와 의미를 찾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경우 심신 안정 도모를 근거로 사형수를 위한 처우를 따로 만들어 운영한다"며 "우리나라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한다면 이같은 운영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반면 한 법조계 관계자는 "흉악범죄로 인한 국민들의 두려움이 커지는 상황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사형제를 대체할 형벌로서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사형 미결수 59명은 어떻게 할지 고민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시 수형자 영구 수용에 드는 비용만 늘어나는 게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앞서 법무부가 사형수를 비롯한 재소자 한 명을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1년간 3000만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고령화에 따라 노인 재소자가 증가하는 문제 또한 수용비 증가의 원인으로 꼽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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