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금융기관의 계좌개설 심사업무 담당자가 신청인의 허위 기재내용을 그대로 믿고 추가 확인 없이 계좌를 개설해준 경우, 신청인에게 업무방해죄를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업무방해·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성명불상자 B씨의 제안을 받고 자신의 주민등록증과 인감도장 등을 제공한 뒤 A씨 명의로 된 유령법인을 설립했다. A씨는 해당 유령법인이 마치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회사인 것처럼 가장해 은행 직원을 기망하고 4회에 걸쳐 유령법인 명의 계좌를 개설하여 은행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았다.
또한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도 현금카드, OTP기기 등 접근매체를 보관·전달하고 그 대가를 수수하여 전자금융거래법을 위반한 혐의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이어 "범행내용에 비춰 죄책이 무겁고 피고인은 자신의 행위가 불법임을 잘 알면서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질책하며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피해 은행들의 계좌 개설업무를 방해했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입증되지 않았다"면서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포통장의 양도 등 범죄발생을 인지·예견한 경우 은행으로서는 계좌개설을 거부할 수 있지만, 단지 고객이 금융거래목적 등에 관한 질문에 답변하지 않거나 임의로 답변한 사실만으로는 은행이 계좌개설을 거부할 수 있다고 볼 근거가 없다. 또한 피고인에게는 자신의 범죄행위를 밝힐 권한이 있는 주체에게 범죄행위를 답변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한 피고인이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도 접근매체를 보관하고 있던 행위에 대해서도 "피고인의 내심의 의사만을 가지고 처벌하는 것은 처벌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이고 이는 수사기관 등에 의한 무고한 범죄자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결국 재판부는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 나머지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년으로 감형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금융기관의 계좌개설 심사업무 담당자가 신청서에 기재된 허위 답변을 그대로 믿고 증빙자료 요구 등 추가적인 확인조치 없이 계좌를 개설해준 경우, 이는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이므로 신청인의 위계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다"며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반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피고인은 성명불상자의 지시에 따라 하는 일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전자금융거래법상 접근매체를 이용해 저질러지는 범죄의 내용이나 저촉되는 형벌법규, 죄명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이러한 인식은 미필적 인식으로 충분하다"며 접근매체를 보관하고 있던 행위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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