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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국내 투자자들은 엔화 약세에 '사자'로 대응하고 있지만 정작 일본 투자자들은 해외 자산을 매입하는 데 분주한 움직임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1107조엔(7조5000억달러)에 달하는 일본 가계의 예금 자산이 엔화의 추가 하락을 위협하는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22년래 최고치인 5.25~5.50%까지 올린 데 이어 9월19~20일(현지시각) 통화정책 회의에서 추가 인상과 고금리 장기화를 예고하면서 초저금리 환경에 갇힌 일본 투자자들이 해외 자산에 더욱 적극적으로 '입질'할 것이라는 얘기다.
일본은 국민들의 자산 소득을 두 배로 확대해 예금에 크게 치우친 가계 자산 구조를 바꿔 놓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
엔화 [사진=블룸버그] |
지난 2014년 처음 선보인 NISA(Nippon Individual Savings Account)를 10년만인 2024년 개정해 투자 수익률에 대한 비괴세 혜택을 확대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NISA는 국내외 주식과 채권에 연간 120만엔까지 5년간 비과세 혜택을 제공하는 제도로, 일종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에 해당한다.
일본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 자산 매입 추이 [자료=블룸버그] |
일본 정부는 2024년 비과세 혜택을 확대한 신(新) NISA를 시행하면 국내 주식시장을 부양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시장의 판단은 다르다.
소위 '와타나베 부인'들이 국내 자산보다 고금리 매력이 높은 해외 자산시장에서 투자 기회를 찾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블룸버그에 따르면 NISA 계좌의 해외 주식과 펀드가 2015년 이후 연평균 30%를 웃도는 속도로 늘어났다.
2023년 3월 말 기준 NISA 계좌의 해외 자산이 500억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엔화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신(新) NISA 시행이 본격화되면서 1107억엔에 달하는 자산이 해외 금융시장으로 빠져나가면 엔화에 작지 않은 타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시장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도쿄 소재 NLI 리서치의 우에노 츠요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NISA의 비과세 확대가 일본 가계 자금의 해외 유출을 부추길 것"이라며 "저금리와 저성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에 비해 고성장을 보이는 국가의 주식이나 고금리를 제공하는 채권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 투자자들의 해외 자산 매입이 크게 늘어날수록 엔화 매도 물량이 증가하고, 달러화를 포함한 주요 통화에 대한 엔화 약세가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신(新) NISA는 비과세 혜택의 한도를 연간 120만엔에서 360만엔으로 세 배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예금 통장에 묶인 자금을 투자 자산으로 이동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투자자들의 행보에 월가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츠비시 UFJ 고쿠사이 애셋 매니지먼트의 야기 다카유키 이사는 "비과세 혜택을 확대한 NISA가 가계의 자산 구조를 크게 바꿔 놓을 것"이라며 "예금에서 투자 자산으로 이동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상당수의 투자자들이 초저금리 여건을 빌미로 해외 통화나 주식, 채권 매입에 나설 전망"이라고 말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엔화의 실질 실효 환율은 데이터가 집계되기 시작한 1970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주요 통화에 대한 엔화 가치가 떨어지는 만큼 인플레이션 상승을 부추기는 상황으로, 일본 투자자들이 해외 투자 확대 전망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마츠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은 미국 연준이 고금리 장기화를 예고한 이후 구두 개입에 나섰다.
그는 "엔화 환율의 안정적인 흐름이 중요하다"며 "정부는 환율 추이를 철저하게 모니터링하고, 적절한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재팬 이코노미 워치>의 발행인 리차드 카츠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를 갖고 일본 금융 당국의 환시 개입으로 엔화 약세를 멈추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일본은행이 연준의 긴축 장기화 입장이 확인된 시점에 마이너스 금리 체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월가는 구두 개입 이외에 보다 적극적인 엔화 부양 의지가 낮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해석한다.
shhw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