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부친이 유언하는 자리에 차남만 참석했더라도 다른 자녀들과 무관하게 차남에 대한 '사인증여'의 효력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고(故) A씨의 차남 B씨가 C씨 등 형제들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A씨는 2018년 1월 경 자신이 소유한 거제시 하청면 소재 땅 일부를 차남인 B씨에게, 나머지는 장남 C씨에게 상속하고 딸들에게는 각 2000만원씩 지급한다는 내용의 유언을 했고 B씨는 이를 직접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이후 A씨는 2019년 5월 사망했고 유언이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효력이 없게 되면서 A씨의 배우자와 자녀들은 법정상속분에 따라 각 부동산에 대한 상속 등기를 마쳤다.
B씨는 A씨가 유언할 당시 각 부동산에 관해 사인증여 계약이 체결됐다며 형제들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 절차를 이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사인증여는 증여자가 생전에 재산 증여를 약속하고 증여자가 사망하면 그 효력이 발생하는 증여 계약의 일종으로, 수증자와의 의사 합치가 있어야 한다.
1심은 "증거만으로는 망인(A씨)이 원고(B씨)에게 각 부동산을 사인증여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A씨가 각 부동산을 B씨와 장남에게 일부씩 분배하는 취지로 말했고 그 모습을 B씨가 동영상을 촬영한 사실 등을 종합해 민법상 '서면에 의하지 않는 사인증여'에 해당한다고 봤다.
항소심은 "원고가 사인증여를 승낙하면 망인과 원고 사이에 사인증여가 성립하는 것이므로 동영상 촬영 내용에 피고들의 동의가 있어야 사인증여의 효력을 갖는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C씨 등에게 "B씨가 수증받은 지분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 절차를 이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유언자인 망인과 일부 상속인인 원고 사이에서만 사인증여로서의 효력을 인정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그와 같은 효력을 인정하는 판단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했다.
대법은 "망인이 단독행위로서 유증을 했으나 유언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 효력이 없는 경우 이를 사인증여로서 인정하려면 증여자와 수증자 사이에 청약과 승낙에 의한 의사합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망인이 유언하는 자리에 원고가 동석해 동영상 촬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원고와 사이에서만 의사의 합치가 존재하게 돼 사인증여로서 효력이 인정된다면 재산을 분배하고자 하는 망인의 의사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그 자리에 동석하지 않았던 피고들에게는 불리하고 원고만 유리해지는 결과가 된다"고 덧붙였다.
증거로 제출된 동영상에 따르면 A씨는 유언 내용을 읽다가 '그럼 됐나'라고 자문했을 뿐 B씨가 '상속을 받겠다'라는 등의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법은 이 같은 점을 지적하며 "원고와 사이에서만 유독 청약과 승낙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고 해당 유언이 효력이 없게 되는 경우 망인이 다른 자녀들과 무관하게 원고에 대해서만 유언대로 재산을 분배해 주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볼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심 판단에는 유언이나 유증의 효력이 없는 경우 사인증여로서 효력을 갖기 위한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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